한국철학 ‘잃어버린 고리’ 찾기
“일제강점기는 암울했지만 한국철학의 기초를 닦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학계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철학사에서 누락된 당시의 많은 철학자들을 발굴하는 것은 근대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일입니다.”
이태우(46·사진) 대구가톨릭대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철학자를 발굴하고 있다. 이 시기는 서양철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됐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거론하면 흔히 주체적인 철학보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일제의 관학(官學) 또는 어용철학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사고가 우리 학술사와 지성사를 왜곡하고 경직된 시야를 갖도록 만들었어요. 이 시기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시대를 고민하며 철학을 했습니다.”
이 교수가 그동안 연구를 통해 밝혀낸 당시 철학자는 80여 명. 그가 꼽는 가장 큰 수확은 유학파 1세대였던 김중세(1882∼1946?) 이관용(1891∼1933)과 토종 1세대 철학자 배상하(1904?∼?) 등의 활동을 밝혀낸 것이다.
“한국 최초의 해외 유학생 김중세는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요. 그가 귀국할 때 신문들이 크게 보도했고 여러 곳에서 환영행사가 열렸습니다. 이관용은 스위스 취리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로 서양철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글을 신문에 30여 회 게재했지요. 경성제대 철학과 1회 졸업생인 배상하는 이제까지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활동을 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죠. 하지만 그가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29년 신문에 게재한 논문을 놓고 1년 동안 조선 지성계가 뜨거운 논쟁을 벌인 것을 보면 탁월한 철학자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교수는 연구를 위해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신문에 등장한 철학 관련 글과 기사들을 분석했다. 철학자들이 암울했던 식민지 현실 속에서 그들의 철학적 견해를 왕성하게 펼친 공간이 신문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그는 “서양철학의 한국적 해석과 수용을 고민하다가 서양철학이 한국에 씨를 뿌린 시기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2006년 7월 비슷한 고민을 하던 대학 동기 영남대 최재목(철학) 교수와 함께 한국근대사상연구단을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연구에 매달렸다. 이후 ‘일제강점기 신문 조사를 통한 한국 철학자들의 재발견’ ‘일제강점기 잡지를 통해 본 유럽 철학의 수용 현황’ 등 여러 논문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최근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지원 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됐다. 2011년까지 3년에 걸쳐 진행되는 연구의 주제는 ‘일제강점기 신문에 나타난 한국 철학자들의 현실인식’이다.
그는 “당시 진행된 철학자들의 ‘유물론-유심론 논쟁’과 철학관, 위기담론 등을 통해 근대를 살았던 그들이 철학과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식민지라는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