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 8일 부모님과 함께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향하던 송문희(24·여·방송작가) 씨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당시 네 살배기 어린아이였던 송 씨는 달리는 열차 탑승계단의 문 밖으로 떨어졌던 것.
온 열차에 비상이 걸렸고, 승무원들은 뒤따라오는 열차에 무전을 통해 사고 소식을 알렸다. 송 씨의 부모는 수원역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기다렸지만 열차 두 대가 지나도록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열차에서 “아이를 찾았다. 살아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잠시 후 송 씨는 부모의 품에 안겼다.
20년이 지나 송 씨는 지난달 초 코레일 홈페이지에 자신을 구해 품에 안고 부모에게 데려다 준 기관사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고, 한 달 만에 송 씨의 은인이 5일 밝혀졌다.
주인공은 KTX 기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병욱(53·사진) 씨와 지금은 기관사가 된 당시 부기관사 차재학(49) 씨. 이들은 “무전을 받은 때가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으로 일단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가다가 철길과 철길 사이에 떨어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며 “천만다행으로 부드러운 콩자갈 위에 떨어져 이마의 상처를 빼고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한 씨는 “아이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는데 잘 자라 대학도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활약하고 있다니 정말 기쁘다”며 “차 씨와 함께 어엿한 숙녀가 된 그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