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이 '바보'들을 찾아온 까닭은?
6일 경기 화성의 '책 읽는 집-옥란재(玉蘭齋)'에는 영하 12도의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광주 해남 장성 논산 대전 진천 등 전국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돈 재벌, 철학 재벌, 노래 재벌, 그림 재벌, 사진 재벌, 과수 재벌, 만두 재벌, 가구 재벌, 돌 재벌, 벌레 재벌, 닭 재벌, 치과 재벌, 사람 재벌, '구라'재벌….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단어는 그러나 '문화와 사랑'이었다.
이번 행사는 4년간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들'을 이끌어 오면서 양로원, 치매노인,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에 헌신해 온 바리톤 우주호의 음악 활동에 대한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 농어촌문화미래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원규 홍사종씨와 서울대 미대 김병종 교수가 초청자로 나섰고, 각계 인사 100명이 참석하는 등 큰 성황을 이뤘다.
임권택 감독,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명예회장,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정헌관 국립산림과학원 전문위원, 박현순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황의인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박인숙 서울 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정창훈 조각가, 이왕림 열린의사회 회장, 서인수 (주)성도ENG 대표, 성일종 (주)엔바이오컨스 대표, 이윤현 현명농장 대표, 강용 학사농장 대표, 이순심 갤러리 나우 대표, 박수현 국제존타 서울V클럽 회장, 신철호 (주)포스닥 대표, 박혜경 자하 손만두 대표, 우성화 티켓링크 부회장, 가수 현숙씨 등 각계 인사가 망라됐다.
우주호의 '이별의 노래'와 '초롱꽃'으로 문을 연 음악회는 테너 유헌국 송승민 김준홍 정중순 구형진, 바리톤 이진원 박영욱, 베이스 손철호 이병기 김성범 등 '바보 음악가들'의 '향수' '도라지꽃' '어느 가을의 멋진 날에' '마법의 성' '농부가'등으로 이어졌고, 그 때 마다 박수가 폭설(暴雪)처럼 쏟아졌다. 피아니스트 이진이, 바이올리니스트 이선희, 첼리스트 이완이 등 세 자매가 협연했다.
'당대의 구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칼럼니스트 조용헌은 "테너는 여성의 '상단전(上丹田)'인 머리를 감동시키고, 바리톤은 여성의 '중단전(中丹田)'인 가슴을 사로잡으며, 베이스는여성의 '하단전(下丹田)'인 육감(肉感)을 감전시킨다"고 말해 폭소와 함께 큰 박수를 받았다. 흥이 오른 성악가들은 앵콜 곡으로 화답했다.
철학가인 이명현 전 교육부장관은 "노래를 부른 성악가들이나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분들은 각 분야, 맡은 자리에서 소리 소문 없이 '바보처럼 살아온 분'들" 이라며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당부했다.
임권택 감독은 "이 외진 곳 까지 이렇게 많은 분 들이 예술가들을 후원해주기 위해 와 준 정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을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이원규 (주)세실대표는 "세상의 모든 재벌 중 가장 큰 재벌은 '사랑 재벌'"이라면서 "이 각박하고 어려운 시기에 우리 모두 이웃과 온기를 나누는 '사랑 재벌'이 되자"고 말했다. 옥란재에 걸린 12월 밤 반달이 이날 유난히 아름다웠다.
화성=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