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1년 폴란드 비상계엄 선포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2시 58분


1981년 12월 13일 오전 7시, 폴란드 총리 겸 국방장관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는 특유의 어두운 안경을 쓴 채 국영TV에 나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폴란드가 ‘깊은 수렁’에 빠지기 직전이다. 이제 폴란드에서 자유의 실험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하는 한편 파업과 집회를 금지하고, 개인 차량에 대한 기름 판매도 금지했다. 동유럽 최초의 자유노조 솔리다르노시치(연대)는 불법단체로 규정됐다.

이날 계엄령과 함께 구국(救國)군사평의회가 설치됐고 야루젤스키는 스스로 의장에 취임했다. 이미 그날 새벽부터 폴란드 군과 경찰 병력은 주요 전략적 거점에 배치됐고 특수경찰 치안기동대는 레흐 바웬사를 비롯한 솔리다르노시치 노조원 수천 명을 검거했다.

나중에 그는 계엄령 선포 때 밝힌 ‘깊은 수렁’이 소련의 폴란드 침공을 에둘러 말한 일종의 암호였다고 설명했다. 계엄령 선포는 소련의 침공이라는 최악(最惡)의 상황을 막기 위한 차악(次惡)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재야 지도자들은 공산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고 새로 탄생한 시민사회를 억압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당수 폴란드인은 야루젤스키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그는 1990년까지 대통령으로서 폴란드를 통치할 수 있었다.

야루젤스키는 1993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만약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달리 행동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깊이 후회한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고 갈 큰 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차악의 선택’ 주장은 야루젤스키가 꾸며낸 시나리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소련 붕괴 이후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특히 옛 소련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소련은 폴란드를 침공할 계획도 없었고 야루젤스키의 군사적 지원 요청마저 단호하게 거절했다. 소련은 폴란드 정부에 상황을 수습하라는 압력을 가했지만 솔리다르노시치 문제는 폴란드 정부의 문제일 뿐이라고 정리했다는 것이다.

2006년 3월 폴란드민족기억연구소는 야루젤스키를 고발했다. 폴란드 검찰은 솔리다르노시치 노조원들을 불법 구금한 구국군사평의회를 조직폭력배와 같은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 야루젤스키에게 이 조직을 지도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올해 9월 85세의 야루젤스키는 바르샤바 법정에 출두했다. 늙고 힘없는 노인이었지만 계엄 선언 때와 똑같은 짙은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그의 주장은 똑같았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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