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학력을 물어볼까봐 조마조마하고 학교 이야기 하면 왠지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어딜 가든 자신 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으니까요.”(전영혜·50·여)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제때 학업을 끝마치지 못했던 한림실업고의 늦깎이 주부학생 274명이 10일 드디어 고대하던 졸업장을 품에 안고 배움에의 한과 갈증을 풀었다.
학력인정 주부학교인 송파구 장지동 한림실업고의 졸업식이 열린 10일, 운동장은 일찍부터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졸업생들로 가득 찼다.
졸업생들의 머리에 새치가 엿보이고 눈가에 주름이 많다는 차이만 있을 뿐 졸업식 풍경은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예쁘게 웃어야지. 한 장 더 찍어.”
기념사진을 찍는 내내 주부 졸업생들에게선 ‘까르르’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고 가족들은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그들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학교 게시판에 붙은 대학 합격자 명단에서 ‘엄마’의 이름을 찾는 자녀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흘렀다.
본격적인 식이 진행되자 졸업생들은 그제야 만감이 교차하는 듯 벅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비를 아껴보겠다고 강남구 수서동에서부터 45분 거리를 매일 걸어서 통학해 학업을 마친 나순심(48) 씨는 졸업의 기쁨이 남다르다.
남편이 몸져누운 뒤 파출부 등 갖가지 일을 가리지 않다가 오른쪽 팔에 이상이 생겨 더는 심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그 뒤 공부를 시작한 나 씨는 “그동안 고비도 많았는데 이렇게 졸업을 하고 또 대학에도 진학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돼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젊은 시절 양장점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신구대 패션디자인과에 합격한 나 씨는 “앞으로 장학금까지 노려볼 계획”이라며 당찬 포부도 밝혔다.
김영주(56) 씨는 경기 평택이 집이어서 송파구 잠실에 방까지 얻어 공부를 해왔다.
김 씨는 “애들 키우고 생활하느라 공부를 하고 싶어도 짬을 내지 못했다”며 “결석 한 번 안 하고 영어학원까지 다니며 공부를 했는데 막상 졸업이라니 기쁘고 또 아쉽다”고 말했다.
명지전문대 부동산경영학과에 합격한 김 씨는 “대학 근처에 원룸을 얻고 공부 준비를 마쳤다”며 웃었다.
한림실업고 이준로 상담홍보부장은 “주부 학생들은 학습의욕이 정말 강해 우리가 긴장할 정도였다”며 “앞으로도 어디에서든 다들 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