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선장님의 ‘빛나는 고교 졸업장’

  • 입력 2009년 2월 16일 02시 58분


섬마을 학생들 태워다주며 향학열 불태워… 어제 방송고 졸업

박현수 씨 “대학도 도전할 것”

박현수 씨(50·사진)는 가난한 집안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 씨는 중학교 졸업 후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박 씨는 고교 진학 대신 전기기사의 길을 걸었고 10년 넘게 그 일만 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박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외항선을 탔다. 바다를 떠돌다 문득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외항선을 탄 친구에게서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해 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박 씨는 전남 여수 지역의 섬들을 오가는 통학선의 선장이 됐다. 가방을 들고 통학선에 오르는 학생들을 보면서 다시 향학열이 타올랐다. 더 늦기 전에 못 배운 한을 풀겠다고 결심한 그는 2006년 전남 순천고 부설 방송통신고에 입학했다. 박 씨는 15일 꿈에 그리던 고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박 씨는 방송통신고 입학 후 매달 순천고 학생들에게 50만 원의 장학금을 주고 있다.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돈은 아깝지 않았다. 그는 “늦깎이 공부라서 더 많은 걸 얻고 싶었는데 너무 일찍 졸업해 섭섭하다”며 “2, 3년 후 대학에도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동헌(58) 박용희 씨(57·여) 부부도 이날 충남 홍성고 부설 방송통신고를 졸업했다.

아내 박 씨는 오래전부터 ‘류머티스루프스’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아픈 몸 때문에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 유 씨가 아내의 손을 잡고 방송통신고를 찾았다.

아내는 아픈 몸 때문에, 남편은 힘든 현장 업무 때문에 공부가 쉽지 않았지만 3년 동안 서로 격려하며 공부했다.

박 씨와 유 씨 부부를 포함해 4509명의 고교생이 14, 15일 이틀에 걸쳐 전국적으로 39개 방송통신고에서 졸업식을 가졌다. 일부 방송통신고는 이에 앞서 8일 졸업식을 가졌다.

18일에는 천안 중앙고 부설 방송통신고에서 운영 중인 교도소 학급 8명의 재소자가 졸업장을 받게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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