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소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어요. 죽기 전에 졸업장이나 받자고 시작한 공부였는데….”
1946년 서울대 개교와 함께 입학한 ‘개교둥이’ 이한구 옹(82·사진)이 입학한 지 63년 만에 졸업을 한다.
26일 열리는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장을 받는 이 옹은 서울대가 문을 연 1946년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했다. 독일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 옹은 2년 동안 영어과에서 공부하고 1948년 문리대 독어독문학과로 편입했다. 그러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4학년 1학기에 6·25전쟁이 터지면서 학교는 문을 닫았고 이 옹도 공부를 중단해야 했다.
“전쟁 통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피란을 다니면서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생계를 해결하느라 학업을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한때 독일로 유학을 갈 계획으로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 옹의 꿈은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학업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이 옹은 지난해 6월 서울대 측에 재입학원을 제출했고 지난 학기에 3학점짜리 ‘독어독문학 논문 쓰기’를 수강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등하교를 해야 할 정도로 거동이 편치 않았지만 이 옹은 꿋꿋이 강의를 들었고 ‘카프카의 생애와 문학’을 다룬 졸업 논문으로 학사모를 쓰게 됐다.
서울대 인문대는 26일 졸업식에서 이 옹에게 졸업 증서와 함께 감사패를 수여하기로 했다.
무명의 트로트 가수 현자(본명 양미정·44·사진) 씨가 서울대 입학 25년 만에 학사모를 쓴다.
1984년 서울대 가정학과에 입학한 그는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1년 만에 학교를 중퇴하고 클럽 등 밤무대에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해 왔다.
그는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내게 공부는 사치였다”며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생활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못 다한 배움에의 갈증을 견딜 수 없어 2006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에 재입학했다.
가수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한참 어린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대에서 콘서트를 열어 얻은 수익금 600만 원을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점심 값을 걱정하는 후배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며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그만둔 예전 내 모습이 후배들에게서는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현자 씨는 졸업 후 6개월 정도 영어 공부에 매진한 뒤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 그의 목표는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아동상담을 해 주는 ‘노래하는 강사’가 되는 것이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