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 입원했는데 가해자 얼굴도 못봤어요”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지난달 26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4조 1항 중 일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 낸 조홍주 씨(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4조 1항 중 일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 낸 조홍주 씨(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 연합뉴스
‘교통사고 형사 면책’ 헌재 위헌결정 이끈 조홍주 씨

“보험 들었다고 사과도 안해”… 본인은 소급 못받아

지난달 26일 종합보험 가입자의 중상해 교통사고 형사 면책을 규정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4조 1항 중 일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4년 전 한 교통사고 피해자의 헌법소원에서 비롯됐다.

한때 끔찍했던 교통사고의 경험을 딛고 홀로 헌법소원을 낸 주인공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는 조홍주 씨(30).

조 씨는 2004년 9월 5일 오후 1시경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길을 건너다 승용차에 치였다.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씨는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지만, 그가 당한 사고는 심각한 것이었다.

“17시간 동안 뇌에 가득 찬 피를 빼내는 수술을 받고 회복된 뒤 친구한테서 들었는데, 승용차에 받히자마자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머리부터 땅에 떨어지면서 귀에서 수돗물 쏟아지듯 피가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당시 조 씨는 4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고, 퇴원 후에도 얼굴과 몸 왼쪽에 마비 증세가 와 1년 동안 매일 재활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때때로 통원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사고를 낸 운전자는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

조 씨는 “길을 가다 다른 사람과 부딪치면 자기 잘못이 없더라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간단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헌법소원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위헌 결정이 난 교특법 조항은 가해자가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큰 피해를 불러온 사고에 대해 피해자가 사과를 받거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한다”며 “그게 좀 이해하기 힘들었고 답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99학번인 조 씨는 입원해 있을 때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같은 조항에 대해서 1997년에 합헌 결정이 났는데 다시 헌법소원을 내면 결과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당시 위헌 의견 재판관이 5명이었는데 1명만 더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헌재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줘서 비용도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게 피해를 준 가해자는 벌금을 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형사 처벌을 원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헌법소원을 낸 것이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라거나, 개인적인 이익을 바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위헌 결정은 과거의 일에 대해선 소급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조 씨가 당한 사고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는 게 없다.

조 씨는 “지난 4년 동안 헌법소원을 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실제 위헌 결정이 내려지니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중대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몸이 많이 괜찮아졌다. 운전하는 사람들이 생명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특히 어린이들이나 노인들이 길을 건널 때 운전자들이 더 조심했으면 좋겠다”며 “이번 결정 때문에 전과자가 늘어나고 소송도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이번 결정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없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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