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 급하다”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진 오 씨는 잠시 뒤 “집에 화장품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왔다”며 씩 웃는다.
산을 사랑하면 사람도 순수해지는 걸까. 오 씨는 지난해 히말라야 마칼루(8463m) 로체(8516m) 브로드피크(8047m) 마나슬루(8163m)를 차례로 올라 한 해 히말라야 8000m급 4좌 완등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 집에서 금천구 가산동 회사까지 한참 걸린다. 서울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며 기자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낯설어진’ 서울보다 히말라야가 더 친숙한 듯했다.
○ 19일 10번째인 칸첸중가 도전
서울시 전산직 공무원이던 그는 1993년 한국의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산악인이 됐다. 수원대 산악부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배운 산 타는 일이 직업이 돼 버렸다.
“좋아하는 산을 원 없이 오를 수 있고 월급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는데 이만 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1997년 7월 가셰르브룸Ⅱ(8035m) 정상에 오르며 첫 8000m급 완등에 성공한 그는 2004년 12월 남극 대륙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에 오르며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에 올랐다.
키 155cm, 몸무게 50kg의 작은 체격.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그는 칸첸중가(8586m) 도전을 위해 19일 원정을 떠난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가운데 남은 봉우리는 5개. 그의 표현대로 신이 허락을 한다면 올해 안에 다 오르고 싶단다. 그러면 그는 세계 최초로 14좌에 오른 여성 산악인이 된다.
○ 신이 허락한다면 올해 완등
“어떤 산악인들은 원정을 떠날 때 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주변 정리를 하고 가요. 저는 그게 싫어요. 일부러 집 정리도 안 하고 가요. 돌아와서 치우려고요.”
화창한 날씨.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는 말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새 옷을 사고 싶어요. 사고 나선 입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에요. 이제 산에 다시 오를 때가 된 것 같아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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