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태어나면 3대가 달릴거야”

  • 입력 2009년 3월 16일 02시 52분


35년전 우승 문흥주씨 아들과 ‘마스터스-엘리트’출전

15일 열린 2009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0회 동아마라톤대회 엘리트 부문에 출전해 2시간17분08초로 자신의 최고기록을 3초 앞당긴 문병승(28·상무).

옷을 갈아입은 그는 결승선으로 다가갔다. 동료 선수의 골인을 기다리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 그가 기다린 사람은 다름 아닌 마스터스 부문에 출전한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바로 문흥주 씨(61). 1970년대 한국 마라톤을 주름잡았던 선수다.

국군체육부대 중장거리 감독을 하다 2004년 퇴직한 문 씨는 1974년 제45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6분15초로 당시 한국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듬해 제46회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문 씨의 기록은 10년간 깨지지 않았을 정도로 당시에는 독보적이었다.

이날 문 씨는 2시간43분26초로 들어와 환갑의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문 씨는 결승선을 통과하고 숨을 돌린 뒤 아들을 보자 기록부터 물었다. 다소 실망한 기색을 나타낸 문 씨는 곧 아들의 어깨를 다독였다.

문 씨는 “뛰는 내내 아들의 기록이 궁금했다. 이번에는 내 기록을 깰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기록을 깨지 못한 미안함이었을까. 문병승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문병승은 “주위에서 저는 몰라봐도 아버지는 알아보니까 부담이 크다. 하지만 아버지가 경기 운영이나 몸 관리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문 씨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뱉었다.

“병승이는 선천적으로 마라톤을 할 체질을 물려받았어요. 그만큼 소질이 있어요. 다만 노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문병승은 “훈련을 더욱 열심히 해 올해는 꼭 아버지의 기록을 뛰어넘어 2시간13분대에 진입하겠다”고 화답했다.

부자 마라토너는 ‘3대 마라톤 가족’의 꿈도 갖고 있다.

“만약 손자가 태어난다면 셋이서 함께 뛸 날이 꼭 왔으면 좋겠네요, 하하.”

<특별취재반>

■레이스 이모저모

시각장애마라토너 “세번째 도전”

○…올해로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세 번째 참가한다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염동춘 씨(49)는 ‘해피 레그’로 불리는 도우미 신영수 씨(50)의 팔을 붙잡고 코스를 달렸다. 염 씨는 “시각장애인에게 마라톤은 완주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도우미와 함께라면 결코 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며 “이번 대회에도 시각장애인 동호회에서 10명도 넘는 사람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광화문에 도전자의 벽 대형입간판

○…한화그룹은 출발 장소인 광화문에 ‘Challenger Wall(도전자의 벽)’이라는 대형 입간판을 세워 눈길을 끌었다.

그룹 직원뿐 아니라 일반 참가자까지 이 간판에 각자의 도전 과제와 소원을 쓰며 각오를 다졌다.

대기업 가운데 최다인 70명이 ‘GREAT CHALLENGE(위대한 도전)’란 팀명으로 참가한 한화그룹은 전원이 완주에 성공했다.

‘공명선거’ 깃발 얼굴에 쓰고

○…‘마라톤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공명선거로’라고 적힌 작은 깃발을 얼굴 양옆에 끼고 달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마라톤 동호회 회장 김철 씨. 그는 “마라톤을 하다 보면 이보다 정직하고 속임수를 쓸 수 없는 운동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며 “마라톤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정치인들이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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