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길’ 찾아 미국행 결심
朴대통령이 靑 초대 여비건네
“가족 생계비 도와주라” 지시도
강의에 바쁘고 정부기관에 불려 다니다 보니 나의 이중생활에 회의가 점점 깊어져 갔다. 이대로 가면 나는 장차 학자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나는 또다시 결심을 했다.
‘신변을 정리하고 학자로 돌아가자. 그것이 나의 천직이 아니더냐.’
마침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교수 초청 프로그램이 있어 이승윤 교수가 다녀왔는데 그 뒤를 이어 나도 그곳에 가기로 했다.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 등 각 대학 출강을 모조리 정리하고 평가교수단을 비롯한 각종 위원회에도 사표를 내고 나니 홀가분했다. 이제부터 새 생활이 시작된다는 감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평가교수회의에 참석했을 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회의가 끝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교수들과 악수를 하는 자리에서 내 차례가 오자 최주철 기획조정실장이 “남 교수는 공부하러 다시 미국에 다녀온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멈칫하더니, 물었다.
“그래요. 언제 떠나시죠?”
“일주일 후입니다.”(나)
“이따가 내 방에 좀 들르시죠.”(박 대통령)
나는 “네” 하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택시를 타고 난생 처음 청와대로 갔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우선 그 방의 검소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 집무실이니까 굉장한 방이겠지’ 하고 들어섰는데,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앞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 세트의 소파가 있을 뿐이었다. 대통령은 나를 소파로 안내한 뒤 의자에 앉자, “아주 가는 것은 아니지요?” 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1년 기한으로 대학에서 휴직을 허가받았습니다.”(나)
“혼자 가나요?”(박 대통령)
“내자와 어린 놈 하나를 데리고 갔다 올까 합니다. 집에는 어머니와 두 아이를 두고 갑니다.”(나)
이런 대화가 있은 후에 잠시 평가교수단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대통령은 준비해둔 자색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소. 약소하지만 여비에 보태 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책상 옆에 붙은 벨을 눌렀다. 몇 분 후 이후락 비서실장이 들어 왔다. 박 대통령이 “남 교수가 1년 동안 집을 비우고 미국에 공부하러 간다는데, 집에 없는 동안 가족들의 생계비를 도와주도록 하세요”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후대와 온정 앞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청와대를 걸어 나오면서 박 대통령이 나에게 보인 관심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학교로 돌아가야지.”
이렇게 나 자신을 타이르며 택시를 잡아탔다.
박 대통령의 지원 덕택에 나는 아무런 후고(後顧) 염려 없이 스탠퍼드대에서 공부에 전념했다. 이곳에서 김재익 씨(나중에 경제기획원 비서실장이 된다)를 다시 만나게 됐고 경제학을 전공하는 김윤형 박사와 통계학을 전공하는 김대영 박사를 만나게 됐다. 나는 대학원 시절에 못 다한 수리경제이론을 파고들었고 대학원 수학강의에 출석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다. 만약 이때 학문의 길을 버리고 관계에 투신하는 것이 나의 운명임을 알았더라면 스탠퍼드대에서의 1년을 이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국제정치 등을 공부하고 더러는 대학 골프장에 나가 골프라도 배웠을 것이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