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고… 재미로… 뛰기 시작한 동호회원들
“수업후 주3일 모여 훈련 다음에는 기록 더 단축”
전원 예선 탈락했어도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다. 순수 아마추어 팀인 서울대 육상부가 7일 안동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제64회 전국대학육상경기선수권대회 겸 제25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대표 선발전에 8년 만에 출전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귀화한 왕량(체육교육과 2학년)은 남자 100m 예선 2조에서 15초05를 기록했다. 10초74로 같은 조 1위를 차지한 국가대표 여호수아(성결대)와는 4초31이나 차이가 났다. 거리 차이는 약 30m. 왕량은 400m 예선에서도 1분20초78로 1위 박상우(49초09·영남대)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30초가 넘어서야 골인했다.
그래도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 출전해서 그런지 긴장됐지만 재미있었어요.” 그는 115kg나 되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3주 전 육상부에 가입한 왕초보. 농구가 좋아 체육학과를 선택했는데 어깨를 다쳐 농구를 할 수 없게 되자 “살도 빼고 멋있어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육상을 시작했다.
군대를 갔다 온 뒤 올해 사회과학대에 입학한 신세호는 병영생활의 즐거운 추억 때문에 육상부에 가입했다. 포상휴가를 준다고 해서 무작정 달렸는데 1등을 했다. 이번 대회는 기량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출전했다. 하지만 이날 100m에선 파울로 실격했다. 400m 예선에선 1분03초34로 4명 중 4위로 예선 탈락. 그는 “역시 엘리트 선수들은 잘 달린다”며 “다음엔 기록을 좀 더 단축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육상부는 과거 운동부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동호회다. 이준수(체육교육과 4학년)가 세운 12초23이 이날 서울대 선수들이 100m에서 낸 가장 빠른 기록이다. 7명이 출전해 전원 예선 탈락했다. 하지만 이들은 달리는 자체를 즐긴다. 주장 조요한(체육교육과 4학년)은 “우승은 꿈도 못 꾼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주 3일 수업을 마친 뒤 짬을 내 하는 훈련이지만 모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육상부를 회비로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연회비가 40만 원이나 되는 대학선수권 출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행히 동문 선배들의 도움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김동주 대한육상경기연맹 경기위원장은 “명문대 선수들도 육상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 점에서 뜻 깊은 출전이었다. 실력을 떠나서 동참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한편 여호수아는 남자 100m 결승에서 30년 묵은 한국기록(10초34)에는 못 미친 10초56으로 우승했다.
안동=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