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하나만 민영화 시험 해보자”
대통령 뜻에 상업은행 지분 넘겨
내가 재무부 떠나자 다시 원위치
어느 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중은행을 민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을 비쳤다. 다음 날 신문들은 정부가 시중은행을 민영화한다고 대서특필했다.
나는 신문의 과장 보도임을 해명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금융자금도 국가의 자원인 만큼 정부의 계획하에 경제개발에 유용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철학이었고 많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위기에 부닥쳤다. 생각 끝에 비장한 각오로 대통령을 뵙기로 했다.
나는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민영이고 그들은 자율과 경쟁을 통해 오히려 국익과 합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부패가 적다는 것과 민간은행을 통해 정부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도 설명했다.
대통령은 언제나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분이었다. 내 말을 듣고 나더니 내 체면을 보아서인지 “그러면 테스트 케이스로 은행 하나만을 민영화해보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얻어 상업은행 하나를 택해 무역협회에 정부보유 주식을 팔아넘기고 인사권과 예산통제권을 포기했다. 그 후 상업은행의 영업성적은 현저히 개선됐고 무역업계는 크게 환영했다.
그러나 내가 재무부를 떠난 이후 상황이 달라져 상업은행도 실질적으로 다른 은행과 마찬가지로 정부 간섭의 틀 안으로 환원됐다.
정치와 관련된 금융의 부정비리는 그칠 줄 몰랐다. 국회에 나갈 때마다 재무부 장관은 야당 공세의 표적이 되고 신문은 좋아라 하고 이를 보도했다.
대통령도 부정부패 문제를 언제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놈의 정치를 하자니 정치자금을 걷지 않을 수 없고, 정치자금을 걷자니 부정을 묵인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큰 기업들이 여당의 재정위원장에게 접근해 현금차관, 정부공사, 특별 융자 같은 특혜를 얻기 위해 정치자금을 헌납하면 위원장은 관계당국에 부탁해 기업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는 것이 예사였다. 경제당국은 민원사업의 타당성을 심사하지만 여당의 입장을 고려해 법적 또는 행정적으로 무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말썽이 되곤 했다.
나는 생각 끝에 대통령에게 건의를 했다.
“앞으로는 재정위원장의 요구는 일절 거절하겠습니다. 기업이 신청하는 사업은 엄정히 심사해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되 특혜를 받는 기업이 있으면 재정위원장에게 정보를 주겠습니다. 그러면 재정위원장은 기업과 접촉해 사후적으로 자금 헌납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조리를 적게 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내 건의에 찬성했다. 그리고 앞으로 재정위원장이 누구에게서 얼마를 걷었고 당비로 얼마를 썼는지를 매월 보고하게 할 것이니 위원장이 제출할 보고서에 내 도장을 찍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재무부 국장들에게 이제부터는 어떠한 정치적 배려도 하지 말고 공명정대하게 민원을 처리하라고 지시하고 제발 국회에서 장관이 얻어맞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명령대로 매월 말에 위원장 보고서에 도장을 찍었고 대통령은 그를 통해 정치자금과 당비를 통제했다.
당시의 재정위원장이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으나 매우 통이 큰 인물이었다. 하루는 재무부의 차관보를 임명하게 됐는데 나에게 전화를 걸어 청탁을 하기에 “내가 쓸 사람이니 내가 고르겠다”고 했더니 그는 껄껄 웃고 넘겼고,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해서 나를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위원장과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안 가서 그는 정치적 사정으로 재정위원장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나는 경제기획원으로 가게 됐기 때문이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