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있을 때는 몰랐다. 지난달 대만 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한국 최고 기록(4.24m)을 넘은 ‘샛별 미녀 새’ 임은지(20·부산 연제구청). 짜릿했던 그때를 얘기하던 그는 신난 듯 장대를 잡는 동작을 취했다. 오른 엄지 마디의 찢어진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저는 그나마 상처가 없는 편이에요”라며 웃었지만 스무 살 처녀의 손 곳곳엔 상처와 굳은살이 가득했다. 하루에 수십 번씩 봉을 잡고 힘을 주다 보면 손에는 어느새 피가 배곤 한다.
“예전에는 밤에 보습 크림을 듬뿍 바르고 비닐장갑을 끼고 잤어요. 하지만 매일 손을 완전히 건조하게 만들고 연습하니까 별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임은지의 손은 아름답다. 거친 손으로 장대를 잡은 그가 세계로 날아오르는 중이기 때문이다.
부산 서구 서대신동 구덕운동장에서 오후 연습을 마친 임은지를 만났다. 그는 저녁을 먹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보강운동을 한다고 했다. 철봉을 잡고 하늘을 향해 누운 자세로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 산책 나온 동네 아줌마들이 신기한 듯 바라본다. 한국 육상의 희망으로 떠오른 그에게 육상계와 언론은 잔뜩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얼마 후 그 아줌마들은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 운동장에서 이상한 자세로 철봉에 매달려 있던 사람이 세계적인 육상 스타가 돼 있다면 말이다.
임은지의 1차 목표는 8월 독일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출전 기준 기록(4.35m)을 넘는 것. 훈련 때는 4.30m까지 넘었다. 다음 목표는 ‘4.80m’.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이었다면 은메달을 딸 수 있던 기록이다. 그는 “더 열심히 한다면 5m도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자신만만한 그이지만 소망은 여느 딸들과 다르지 않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살다가 서른 살 때 부산으로 왔어요. 어머니는 저를 위해 슈퍼마켓을 하며 고생을 많이 해 몸이 안 좋으세요. 꼭 성공해서 멋진 전원주택을 지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소망이 있다. 육상의 김연아가 되는 것이다.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부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