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쇼팽 전문? 슈베르트가 더 잘 맞는걸요”

  • 입력 2009년 4월 16일 02시 58분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씨가 여는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 사진 제공 크레디아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씨가 여는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 사진 제공 크레디아
피아니스트 임동혁, 세 가지 편견을 반박하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25)는 2일 서울 예술의 전당 내 카페 ‘모차르트’ 앞에서 봄바람을 맞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싸늘한 바람, 가느다란 손가락…. 체질상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이 ‘51kg의 청년’은 건강을 위해 홍삼과 비타민도 꼬박꼬박 챙긴다.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에마누엘 엑스를 사사하는 임 씨는 영국 노던 신포니아 내한공연 협연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4월 초 예브게니 키신 내한 공연을 본 뒤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는 5월 24일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씨(68)가 서울에서 여는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에 출연한다. 아르헤리치 씨는 2001년 임 씨의 연주를 본 뒤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됐다.

○ 재도약의 시기

임 씨는 이번 무대를 계기로 최근의 슬럼프를 뒤로하고 다시 날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제 나이가 앞이 확실히 보이는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며 “그래도 분명한 건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건 음악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2위 입상자를 인정할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2001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3위), 2005년 쇼팽 콩쿠르(3위),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4위) 등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2006년부터 2년여간 슬럼프에 빠져 피아노도 멀리 했다. 그사이 김선욱, 김태형 씨 등 후배들이 해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슬럼프를 겪은 일은 솔직히 후회해요. 더 노력했더라면 좀 더 괜찮은 연주자가 됐을 것 같은 아쉬움도 있고요. 뒤돌아보면 노력보다 재능에 더 의지했나 봐요. 반짝이는 재능만으론 오래 못 간다는 거 알아요. 엑스도 ‘너는 재능이 독일 수 있다’고 그러셨어요.”

2007년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는 그를 발굴한 아르헤리치 씨와 함께하는 뜻 깊은 무대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애정이 많아요. 저도 그를 ‘피아노의 신(神)’이라고 생각합니다.”

○ 편견을 거부한다

‘임동혁’이라는 이름은 ‘거침없는 솔직함+직설화법’과 나란히 놓인다. 이 때문에 국내 클래식계에선 환영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임 씨는 “나를 둘러싼 세 가지 편견이 있다”며 조목조목 해명했다.

▽‘싸가지’ 없다=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 지휘자나 악장과 사전에 얼굴도 익히고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낯가리는 성격 때문에 잘 못해요. 미국에서 생활하며 자기 홍보나 커리어 관리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피아니스트로서 자존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쇼팽이 전문이다=아닙니다. 사실 슈베르트예요. 피아노를 칠 때 늘 노래하면서 치려고 해요. 슈베르트의 감미롭고 낭만적인 곡이 제 스타일과 잘 맞아요. 이번 ‘아르헤리치 음악제’에서 연주하는 라벨의 곡도 어느 정도 좋아하죠. 전 오밀조밀 예쁘게 치는 편이랄까…. 묵직한 스타일의 선욱이(김선욱)와 대비되지요. 브람스도 잘 안 맞아요. 선욱이는 잘 치지만. 선욱이의 쇼팽은, 글쎄요? (웃음)

▽강심장이다=무대 울렁증 정말 심해요. 특히 한국 공연에서요. 무지무지 떨려요. 연주하기 전에 먹은 걸 다 토할 정도니까 말 다했죠. 사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요. 예민한 편이라 이렇게 속을 다 버려서 이번에 한국에서 위 내시경 검사 받아요.

△벳부 아르헤리치 페스티벌=5월 2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5만∼20만 원. 02-318-4301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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