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7>국민투자기금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7분


중화학공업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저축성예금 연간 증가액의 일정 비율만큼 국민투자채권을 인수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투자기금법이 1973년 제정됐다. 같은 해 국민투자기금 심의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남덕우 재무부 장관(왼쪽).
중화학공업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저축성예금 연간 증가액의 일정 비율만큼 국민투자채권을 인수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투자기금법이 1973년 제정됐다. 같은 해 국민투자기금 심의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남덕우 재무부 장관(왼쪽).
나는 대통령에게 중화학공업 개발을 위한 자금조달 방안을 보고해야 할 숙제를 안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국민투자기금’이라는 발상을 하게 됐다. 이 착상은 일본 대장성의 자금운용부 계정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일본 정부는 공무원연금과 같은 공공성 기금의 일정 비율을 채권을 주고 기금으로 흡수해 산업 개발 혹은 사회복지사업에 사용했다. 이것은 정부 예산 밖에서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일종의 편법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공무원연기금 군인연기금 사립학교교원연금 산업재해보상기금 가족계획연구원기금 수출보험기금연금 국민저축조합 예금 등 공공기금이 있는데 이 기금들은 은행에 예치돼 은행 대출 자원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예치 자금을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주고 투자기금으로 흡수하면 상당한 재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재무부 간부를 불러 내 생각을 말해주고 ‘국민투자기금’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창설하자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용만 이재국장의 보고에 따르면 공공성 기금의 동원만으로는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크게 미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추가적으로 은행의 예금 일부를 투자기금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정부가 은행 예금-대출에 직접적으로 간섭한다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 공공성 기금은 일종의 정부 예금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을 정부의 뜻대로 이용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은행의 일반 예금은 그렇지 않다.

또다시 고민에 빠진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자금이 부족하면 어차피 정부 각 부처나 권력기관이 무턱대고 금융기관에 대출 압력을 가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금융의 원칙과 질서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막아야 한다. 고민 끝에 차선책을 생각했다.

日대장성 연기금 운용서 힌트

은행예금 채권인수 방안 마련

23조원 조성 중화학공업 투자

즉 금융기관의 저축성예금 연간 증가액의 일정률(20%)만큼 국민투자채권을 인수(구매)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금을 요구불예금이 아니라 저축성예금과 연간 증가액에 한정한 데에는 이론적 근거가 있다. 즉 저축성예금 범위 내의 투자는 인플레이션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금융기관이 저축성예금 증가액만큼을 리스크가 없는 정부 채권에 투자한다는 것은 금융원리에 배치되지 않고 큰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 착상은 법안으로 만들어졌고 1973년 12월 14일 ‘국민투자기금법’이 제정됐는데 이런 법제화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즉 이 법에 따라 매년 정부 예산과 같이 연간 자금 수급 계획을 수립해 자금의 용도가 결정되면 각 부처는 별도로 은행에 대출 압력을 가할 필요가 없고 또 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금융기관을 과도한 외부 간섭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 나의 숨은 의도였던 것이다. 후일 경제학 교수들은 국민투자기금을 금융탄압의 본보기처럼 매도했는데 내 딴에는 오히려 금융기관을 폭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다. 국민투자기금법은 그 사명을 다하고 2003년 4월에 폐지됐는데 그동안 총 23조 원(조달액 누계 기준)의 내자를 조달해 중화학공업 투자와 설비재의 연불수출(延拂輸出·기계 등 대형 설비재의 수출 대금을 여러 해에 나누어 받는 방식) 확대에 투입됐다.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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