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어떻게 할까. 추가적으로 은행의 예금 일부를 투자기금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정부가 은행 예금-대출에 직접적으로 간섭한다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 공공성 기금은 일종의 정부 예금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을 정부의 뜻대로 이용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은행의 일반 예금은 그렇지 않다.
또다시 고민에 빠진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자금이 부족하면 어차피 정부 각 부처나 권력기관이 무턱대고 금융기관에 대출 압력을 가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금융의 원칙과 질서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막아야 한다. 고민 끝에 차선책을 생각했다.
日대장성 연기금 운용서 힌트
은행예금 채권인수 방안 마련
23조원 조성 중화학공업 투자
즉 금융기관의 저축성예금 연간 증가액의 일정률(20%)만큼 국민투자채권을 인수(구매)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금을 요구불예금이 아니라 저축성예금과 연간 증가액에 한정한 데에는 이론적 근거가 있다. 즉 저축성예금 범위 내의 투자는 인플레이션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금융기관이 저축성예금 증가액만큼을 리스크가 없는 정부 채권에 투자한다는 것은 금융원리에 배치되지 않고 큰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 착상은 법안으로 만들어졌고 1973년 12월 14일 ‘국민투자기금법’이 제정됐는데 이런 법제화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즉 이 법에 따라 매년 정부 예산과 같이 연간 자금 수급 계획을 수립해 자금의 용도가 결정되면 각 부처는 별도로 은행에 대출 압력을 가할 필요가 없고 또 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금융기관을 과도한 외부 간섭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 나의 숨은 의도였던 것이다. 후일 경제학 교수들은 국민투자기금을 금융탄압의 본보기처럼 매도했는데 내 딴에는 오히려 금융기관을 폭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다. 국민투자기금법은 그 사명을 다하고 2003년 4월에 폐지됐는데 그동안 총 23조 원(조달액 누계 기준)의 내자를 조달해 중화학공업 투자와 설비재의 연불수출(延拂輸出·기계 등 대형 설비재의 수출 대금을 여러 해에 나누어 받는 방식) 확대에 투입됐다.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