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기억 영원히” 아름다운 세상구경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8분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경기 파주시 임진각까지 휠체어를 타고 국토 종단에 나선 배재국 군과 아버지 배종훈 씨(오른쪽)가 17일 광주 광산구 운남동 주공8단지 앞 도로를 지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경기 파주시 임진각까지 휠체어를 타고 국토 종단에 나선 배재국 군과 아버지 배종훈 씨(오른쪽)가 17일 광주 광산구 운남동 주공8단지 앞 도로를 지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난치병 ‘근이영양증’ 재국이와 아버지의 620km 국토종단

매시간 근육 풀어가며 하루 8시간씩 강행군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들의 1%도 안돼요”

대전 옥계초교 5학년 배재국 군(13)은 본래 잘 걷는 아이였다. 그러다 여섯 살 때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까치발이 되어갔다. 종아리 근육이 굳으면서 서서히 뒤꿈치가 땅겼기 때문이다. 발로 걷던 아이는 1년도 되지 않아 휠체어 없이는 집 밖을 나갈 수 없게 됐다. 뒤늦게 알게 된 재국이의 병은 ‘근이영양증’이었다. 근육이 점점 굳어 끝내 사망에 이르는 난치병.

17일 오전 9시, 전남 나주시 노암초교에서 만난 재국이는 다리를 끈으로 동여맨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스스로 다리를 오므릴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악수를 청하자 재국이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쳐 힘겹게 손을 내밀었다.

재국이가 아버지 배종훈 씨(43)와 함께 국토종단에 나선 지 5일째 되는 날. 아버지는 이날도 출발에 앞서 이렇게 되뇌었다.

“아름다운 세상, 살아 있을 때 함께 구경하자꾸나. 아빠가 너의 두 발이 되어줄게….”

이들은 13일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도움으로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을 출발했다. 아버지는 걷고, 재국이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간다. 3주에 걸쳐 경기 파주시 임진각까지 620km의 여정이다. 나흘간 120km를 왔고 17일에 나주에서 전남 담양군까지 35km를 걸어갈 참이었다. 재국이와 아버지, 10여 명의 자원봉사자로 이뤄진 종단팀은 인도가 아니라 차도를 택했다. 지체장애인에겐 차도가 차라리 안전했다. 인도에는 군데군데 돌부리와 각종 ‘턱’이 많아 전동휠체어가 고장 나거나 전복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같은 자세로 1시간만 있어도 근육이 뭉치는 재국이를 위해 한 시간마다 휴식을 취해야 했다. 재국이의 휴식이 아버지에겐 ‘전쟁’이었다. 배 씨는 아들의 온몸을 돌려가며 전신을 주물렀다. 마땅한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재국이의 소변도 직접 받아냈다. 전동휠체어 배터리 교체도 대공사였다. 의자를 다 뜯어내고 정교하게 나사를 푼 뒤 10kg이 넘는 배터리 2개를 교체하고 나니 10분의 휴식시간이 금세 지났다. 땀을 뻘뻘 흘리는 아버지에게 재국 군은 “아빠, 쉬면서 해. 아빠는 왜 만날 일만 해”라고 했다.

다시 아들을 들어 휠체어에 앉히던 배 씨의 팔뚝과 뒷목은 이미 햇볕에 새빨갛게 그을렸다.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그의 팔은 유난히 굵었다. 45kg에 달하는 아들을 하루 20∼30번씩 들고 내리며 생긴 ‘서글픈 알통’이었다. 허리에도 디스크가 생겼지만 아이들 병원비도 감당하기 힘든 형편이라 치료를 받아본 적도 없다.

배 씨는 난치병 3남매를 키우는 가장이다. 재국이 누나는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고 막내딸은 안면왜소증을 앓고 있다. 남매들 간호에 매달리느라 직장을 그만둬 배 씨 가족의 월수입은 100만 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비가 전부다. 병원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절망적인 현실에도 배 씨는 아들이 살아있는 동안 당당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갖게 해주고 싶다.

“없는 형편에 재국이 때문에 병원비 부담이 커지면서 아들을 원망하게 되더군요. 욕을 하고 때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큰딸까지 뇌종양에 걸리면서 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아들에게 속죄하는 심정에서 내 두 발로 세상구경을 시켜주고 싶었어요. 제가 아무리 힘들어봐야 재국이의 100분의 1도 안 되겠죠.”

아버지도 아들도 서서히 지쳐가던 오후 4시, 배 씨에게 막내딸의 문자가 날아왔다.

“아부지, 오늘 광주 지났겠어요. 알죠∼ 예림이는 아빠의 희망^^”

배 씨는 “가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겠어요. 이런 딸이 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담양하천 습지보호구역을 지나는 길, 진달래와 수선화가 만발한 가운데 영산강이 끝없이 펼쳐졌다. 빠른 걸음으로 6시간째 아스팔트길을 걸어 다리가 마디마디 아팠지만 자동차로 왔다면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오후 6시 반, 목적지인 담양군 대전면에 도착했다. 이날 하루 자원봉사에 나섰던 한국동서발전 직원들을 바래다주기 위해 나주로 떠난 차량은 40분 만에 숙소로 되돌아왔다. 차로 20분 거리인 그 길을 배 씨 부자는 8시간 반 동안 왔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한 배 씨 일행은 재국이를 씻긴 뒤 오후 9시에야 저녁을 먹었다. 배 씨가 아들의 온몸을 주물러주며 재운 뒤 인터넷 카페에 일기를 올리고 나니 시간은 벌써 오전 1시.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재국이의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매 시간 아들의 몸을 뒤집어줘야 한다. 그날 밤 배 씨는 자명종 시계를 오전 2시에 맞추고 전등을 껐다.

▽재국이 ‘희망의 국토종단’ 자원봉사 문의(www.wish.or.kr)

나주·담양=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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