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 서역(중앙아시아) 벽화를 처음 공개했다.” 1986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중앙청 건물로 이전해 개관하면서 중앙아시아실을 설치해 1500년 전 서역 벽화를 선보였다. 100여 년 전인 20세기 초.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에 유럽 열강이 몰려들어 투루판, 베제클리크, 둔황의 사원과 석굴을 닥치는 대로 발굴했다. 프랑스의 펠리오가 둔황석굴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필사본을 발견해 프랑스로 가져간 것이 이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서역 유물 1700여 점은 이때 발굴된 유물 중에서도 세계적 명품에 속한다. 》
“국내 실크로드 유물은 세계적 명품”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을까. 일본 교토 니시혼간(西本願)사 오타니 고즈이 주지(1876∼1948)가 중앙아시아 발굴 경쟁에 뛰어들어 유물을 일본으로 가져갔으나 파산 위기에 몰리는 바람에 이 유물들이 한국 중국 일본으로 흩어졌다. 이 중 1916년 한국에 온 유물들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소장했고 이것이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됐다.
민병훈=서역 유물은 유럽에서도 공개를 요청할 정도였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공개와 연구가 없었습니다.
권영필=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이 1951년 1·4후퇴 한 달 전 서역 유물을 다른 국보급 유물과 함께 피난시킬 만큼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프랑스와 벨기에 같은 국가들이 서역 유물을 보존 처리해주겠다며 가져가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지만 김 관장이 거절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거죠. 덕분에 1974∼1976년 내가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유학할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소장 베제클리크 사원 벽화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술사학자인 구마가이 노부오가 1970년대 내한해 수장고에 있던 베제클리크 사원 벽화 한 점을 접하고 “6·25전쟁 때 재가 된 줄 알았는데 살아남아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민=1986년 박물관이 중앙아시아실을 개관한 뒤 한국에 실크로드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교수님은 서역 문명과 고대 한국 문화의 교류에 처음 주목한 학자입니다.
권=당시 영남대 교수였지만 서울을 오가며 중앙아시아실 개관을 준비했습니다. 1년이 걸렸습니다. 서역 문화에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뿌리를 밝혀줄 결정적인 실마리가 숨어 있습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 제품,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양식과 소재가 모두 문명 교류의 증거죠.
권 교수 덕분에 서역 유물의 백미인 복희여와도, 1400∼1500년 전 종이 행정 문서 등 희귀 유물의 가치가 드러났다.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에서 출토된 복희여와도는 만물의 생성 원리를, 남자신 복희와 여신 여와가 어깨를 껴안고 하반신을 서로 꼬고 있는 뱀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권 교수는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68)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1969년 국립박물관 학예사였던 강 전 관장이 내가 있던 학교로 찾아와 박물관에 추천할 인물을 부탁했는데, 1주일 뒤 내가 나를 천거했죠.(웃음)”
권=21세기는 문화와 경제가 상호 작용하는 시대입니다. 최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지역 국가와 경제 교류가 늘고 있는데 이들의 문화를 모르고 접근하면 안 됩니다. 한쪽만 강조되면 문명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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