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39>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1971년 한국을 방문한 스피로 애그뉴 미국 부통령과 골프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박 대통령은 서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친 골프에서 9번 홀에서 파를 하고 게임을 끝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1년 한국을 방문한 스피로 애그뉴 미국 부통령과 골프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박 대통령은 서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친 골프에서 9번 홀에서 파를 하고 게임을 끝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안에선 정국요동… 밖은 인권논란

특보들 위기타파 해외설명회 기획

“美출장” 보고가 마지막 될줄이야

1979년, 청와대 특보실에는 매일 같이 반정부 데모와 정당 싸움에 관한 정보가 올라왔고 미국 언론과 의회에서는 한국의 인권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도저히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박정희 대통령도 정치적 결단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없지 않은가? 그러면 특별보좌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나는 답답한 나날을 보내다가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는 특보실 주관으로 정국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해 대통령에게 솔직히 보고하여 정치적 결단을 도와드리는 일, 둘째는 한국 정치상태를 비판하는 해외 여론을 무마해 해외 채권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특보들과 상의해본 결과 첫째 문제에 대해서는 어차피 연말에 대통령에게 종합적 정세보고를 하는 관례가 있으므로 그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게 중론이었고, 둘째 문제에 대해서는 3특보(나, 김경원, 함병춘)가 유럽 동남아시아 미국을 방문해 한국 정치발전의 기본 방향을 설명하고 아울러 경제현황과 대외경제정책을 설명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내가 맡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로서는 미국에 가서 경제협력에 관한 연설을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정치 문제에 관한 연설을 해야 하니 만만치 않은 일로 느껴졌다. 영문 글을 잘 쓰는 정훈목 보좌관에게 초고를 써보라고 지시는 했지만 원래 내 연설은 직접 쓰는 습관이 있었다. 때마침 여름 휴가철이라 원고 작성을 위해 강원 설악산의 호텔로 갔다. 호텔방에서 소형 타이프라이터를 두드리며 정 보좌관이 쓴 초고에 수정을 거듭했다. 나중에 호텔 종업원이 말하기를 타이프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무전 치는 소리와 같아 지방 순경이 혹시 간첩이 아닌가 의심해 내 신원을 확인하고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연설 원고 작성과 출장준비를 끝낼 무렵 대통령은 완성돼 가는 경주 관광단지에 외국사절들을 초청했는데 나를 포함한 몇몇 특보가 수행하게 됐다. 대통령이 골프를 치자고 해서 관광공사 사장, 경남 도지사, 그리고 내가 한 팀을 이루게 됐는데 대통령은 그날따라 골프가 잘 맞아 9번 홀에서 파를 하고 게임을 끝냈다. 박 대통령이 마지막 골프를 파로 끝낼 줄이야 신(神)만이 알고 있었다. 원래 박 대통령은 골프를 좋아했지만 자주 치지는 못했고 게임이 끝나면 수행자들에게 특제 막걸리를 돌리고 우동을 드는 것이 상례였다.

그날 만찬에는 외국사절들과 좀 떨어져 있는 방에서 박동진 외무부 장관과 특보들이 배석했다. 박 장관이 외국 원수나 사절이 내한했을 때 숙박할 시설이 마땅치 않다고 고충을 말하자 대통령은 영빈관을 짓자고 말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나는 “각하, 저는 오늘 밤에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왜요?”(대통령)

“내일 미국에 출장 가기로 보고드렸습니다.”(나)

“참, 그렇군.”(대통령)

이것이 박 대통령과 나 사이의 마지막 대화이자 영원한 작별이었다.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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