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최고경영자를 CEO라고 하는데 국가의 최고경영자인 대통령도 CEO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한때 CEO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소리가 높기도 했다.
그러면 CEO에게는 경영을 위해 어떠한 기능이 요구되는 것일까. 나는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경영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둘째로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획을 세워야 한다. 셋째로 기획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과 운영 시스템을 확립해야 하고, 넷째는 집행 과정을 분석 평가하여 잘못이 발견되면 즉각 시정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CEO는 성공할 수 없고 CEO 자격도 없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시정 스타일은 CEO의 기능과 완전히 합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그는 경제개발과 국방력 강화가 시정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경제 발전을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계획 추진을 위한 조직 개편으로 경제기획원(EPB)을 창설하고 부총리가 경제기획원 장관을 겸하게 하는 동시에 이례적으로 예산 편성권을 재무부가 아니라 경제기획원에 두도록 했다. 5개년 계획의 추진 과정을 분석 평가하기 위해 국무총리실에 심사분석실을 두어 분기마다 심사분석회의를 개최해 문제가 발견되면 반드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심사분석회의 이외에도 대통령은 월례경제동향보고, 월례수출확대회의 등을 주재했고, 쉴새없이 정부기관과 지방을 순시하고, 이를 통해 관계 부처의 업무 수행을 감독하는 동시에 민간부문의 여론과 협조를 이끌어 냈다. 심사분석회의나 기타 회의에서 각부 장관은 자기 소관 업무를 평가받으므로 업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공무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 했다. 심사분석회의가 다가오면 상급 공무원들이 자기 부처 소관 업무를 기획관리실장이 어떻게 보고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획관리실에 로비를 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고 넘어가는 것이 박 대통령의 행정 스타일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산림녹화가 박 대통령의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인데 어느 회의에서 농림부가 도벌 문제를 보고했다. 당시 도벌 방지는 영림서 소관이었는데 영림서 인력으로는 실효를 거둘 수 없음을 알자 대통령은 그 업무를 경찰을 관장하는 내무부로 이관하라고 즉석에서 지시했다. 그리고 산림녹화 사업을 위해 1967년 농림부의 산림국을 산림청으로 개편했다. 산림녹화야말로 박 대통령의 위대한 치적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5개년 계획도 없어졌고 EPB도 없어졌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나 국가의 운영 원리는 이념이나 정치체제와는 상관이 없다. 민주적 행정 체제에서도 앞서 말한 네 가지 기능을 잘 수행하는 나라는 효율과 생산성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하는 나라는 국제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옛날식 5개년 계획을 부활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도 기획재정부가 매년 ‘경제운영방향’을 발표하고 국무총리실이 심사분석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과연 명실상부한 기능을 발휘하는지는 의문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