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기업서 정치자금 조달
朴대통령 사적 용도로 쓰지 않아
정치인-퇴역 장성 등에 봉투 돌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분에 대한 악의적인 풍설이 나돌았다. 심지어 그가 스위스 은행에 몇백만 달러의 비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퍼뜨리는 정치인들을 볼 때 나는 서글프기만 했다.
그분이 정치자금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의 사적 목적을 위해 돈을 거두거나 쓰는 것을 나는 보지도 못했고 들은 적도 없다. 그분의 국장(國葬)이 끝나자 유족들은 초라한 서울 중구 신당동의 옛집으로 돌아갔고,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축재(蓄財)를 했다는 흔적은 누구도 찾지 못했다.
정치자금을 거둔 것은 박 대통령이나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이나 야당 지도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필자가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돼서 국회에 출석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유명한 야당 지도자가 어느 기업을 거명하면서 공무원과 결탁하여 관세를 포탈했다며 장관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즉시 조사하여 비위사실이 드러나면 가차 없이 처벌하겠다고 답변했다.
재무부에 돌아와서 참모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장관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통관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으나 불법은 아니었고 내일이면 해당 기업 관계자가 그분을 찾아가서 손을 쓸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 국회에 나갔을 때에는 별말이 없었다. 부정부패를 소리 높게 규탄한 야당 지도자도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 박 대통령 이후의 두 대통령은 청와대가 직접 정치자금을 걷게 해 퇴임 후 불행한 사법 처리를 받았는데, 박 대통령은 당의 재정위원장을 통해서 정치자금을 거두었고 그 액수와 용도를 엄격히 통제하려 했다는 것은 지나간 칼럼(8회)에서 말한 바와 같다.
박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면 그분이 여러 개의 누런 봉투에 무엇인가 쓰는 것을 나는 가끔 보았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퇴역해 쉬고 있는 군부 장성들에게 돈을 보내는 봉투였다. 내가 그것을 아는 것은 나 자신도 여러 번 그 봉투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장관들이 언론대책과 국회대책으로 비자금을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필요한 비자금 조달을 위해 장관 참모들이 접대비 계산서를 자기가 잘 아는 기업인에게 돌리는 것을 종종 봤는데 그것이 대가성이 있건 없건 부정 비리의 원류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문기자들은 고위 공직자들의 독직(瀆職)사건이 빈발하는 마당에 장관이 별 탈 없이 지내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묻는 말이, 당신은 최장수 장관을 지냈는데 왜 스캔들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정직하게 말하면 믿어주겠느냐” 하고 말끝을 흐렸지만, 난들 별 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박 대통령이 보내준 봉투가 나를 구제해 준 것은 사실이다. 국회가 열렸을 때,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봉투가 내려왔고 특히 경제기획원에 있을 때에는 예산국회가 열릴 때마다 큰 봉투가 전달됐다. 나는 그것을 예산국장에게 넘겨주고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했다. 나의 참모들은 이런 돈 저런 돈으로 살림을 꾸려 나갔는데 돈이 부족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도 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들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논외로 하고 박 대통령식 봉투 정치가 사라진 것은 민주화적 발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의 봉투정치가 국회가 돌아가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기의 직무수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나 야당 지도자나, 그리고 그 밑의 장관이나 모두 별 수가 없어 현실과 타협하고 지낸 셈이다.
가령 그 당시에 한사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었다 하자. 만약 그가 국가 경영의 대임을 맡았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개탄했던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를 어떻게 요리해서 국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말은 옳지만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가치 있는 목적을 포기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여기에서 도덕가와 경세가(經世家)의 길이 갈리는 것 같다.
하여튼 부정부패를 없애는 것은 아직도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