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한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미실’의 작가 김별아 씨(40·사진)가 신작 역사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박열(1902∼1974)과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사랑을 그린 장편 ‘열애’(문학의문학)다. 지난해 장편 ‘백범’을 발표한 지 1년 만이다.
김 씨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까지 발표한 ‘미실’ ‘논개’ ‘백범’처럼 이번 작품도 ‘위험한 생(生)과 운명’이란 주제에 매혹돼 썼다”며 “이 주제에 적합한 시대를 찾다 보니 위험이 사라진 현대보다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호적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채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가네코는 조선에 살고 있는 고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학대를 당한다. 숱한 상처를 간직한 그는 조선인 남성 박열을 만나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 작가는 “제국주의 근대 일본에서 이탈된 자아인 가네코가 식민지 출신의 무정부주의자를 사랑한 건 ‘자기 존재의 재확인’이란 점에서 필연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이자 무정부주의자 동지였던 그들의 결말은 비극으로 끝났다.
소설의 모티브는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영문판으로 출간된 가네코의 옥중일기를 접하며 얻었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아픔에 공감한 작가는 모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자기 운명을 끝까지 사랑했던 한 인간으로서 가네코의 삶을 되살려냈다. 작가는 “가장 뜨겁고 큰 사랑은 니체가 말했듯 ‘아모르파티(amor fati·운명에 대한 사랑)’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미실’ 이후 줄곧 역사소설을 발표해 온 작가에게 역사(歷史)는 문학 소재의 무한한 보고(寶庫)인 듯하다. 그는 “집에서 책, 자료를 보며 공부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를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며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역사소설을 전부 다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여성 작가로서 자의식의 발현이기도 하다. 김 씨는 “지금까지 역사소설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여성 작가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냐”며 “도식화되거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역사소설 대신 인간의 다채롭고 다각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고대, 중세를 거쳐 근대로 시대적 배경을 옮겨오고 있는 작가는 차기작으론 태평양전쟁을 다룬 작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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