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주도 전반적 구조개혁 추진
과도한 위기관리로 대가 컸지만
외환위기 수습 한국엔 전화위복
1997년 12월 3일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합의한 기본합의서(양해각서)가 발표됐다. 30개 이상의 항목으로 구성된 합의문 내용을 보면 경제성장, 재정, 금융, 기업, 무역, 자본거래 등 경제운영 전반에 걸쳐 개혁과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가히 IMF 관리체제라고 할 만도 했다. 그 후 IMF 주도하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추진됐고 그 효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나는 한국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 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후 반년이 지난 1998년 5월 세계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의 초청에 응해 미국 금융관계 인사 250명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의 외환위기와 정책적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나는 이 연설에서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에는 큰 문제가 없고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환위기는 외환 유동성의 부족에서 오는 것으로 유동성 부족을 초래한 이면에는 한국의 금융과 대기업의 구조적 취약점, 이를 방치한 금융감독의 부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12월 이후 IMF의 강도 높은 외환위기 수습책이 시행됐다. IMF는 자기 자금으로 210억 달러를 염출하는 동시에 IBRD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의 우방국과 교섭해 총액 580억 달러의 융자한도를 설정해 주었고 210억 달러에 달하는 민간은행의 단기부채 상환기간을 재조정하는 채권단 회의를 주선해 줬다. 그 결과 가용 외환보유액이 453억 달러로 증가했다. 전체 대외 채무 중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12월의 44%에서 약 25%로 낮아졌고 수입 수요의 격감으로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돼 대외 지불에 아무런 차질이 없게 된 것은 긍정적 측면으로, IMF와 IBRD에 감사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은 매우 심각한 것임을 설명했다. 1998년 3월까지 산업생산이 전년 동기 대비 13%나 하락했고 물가는 9% 상승했다. 1만 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했고 살아남은 기업들의 조업률은 60%대에 불과했다. 실업자가 200만 명에 달해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고 있고 IMF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의 2∼3%에서 ―1∼2%로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제적 후퇴는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해묵은 숙제인 금융과 기업의 구조개혁을 위해 불가피한 대가라고 볼 수도 있으나 IMF 위기관리 방식이 필요 이상의 대가를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를 달았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한국에 전화위복이 될 것이고 지난날 미국과 IMF, IBRD가 한국을 경제원조의 성공 사례로 선전했듯이 한국은 앞으로 민주화와 세계화의 성공 사례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연설을 끝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