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맛보고 싶어 링닥터 활동”
“아악!”
7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 신생 종합격투기 대회 ‘무신(武神)’에 출전한 한 선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상대 선수의 머리에 부딪힌 이마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선수가 눈도 뜨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자 파란 가운을 입은 링 닥터가 나타났다. 그는 잠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선수를 지켜보더니 이내 능숙한 솜씨로 상처를 꿰맸다. 링에 복귀한 선수를 주의 깊게 지켜보던 링 닥터는 별 탈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선수들을 돌본 파란 가운의 주인공은 최광범 씨(35).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1922∼94) 선생의 맏아들이다. 광범 씨를 9일 오전 그가 일하는 경기 의정부시 신곡2동 백병원 근처에서 만났다.
○ 선수들 눈빛 보면 뭉클해져
광범 씨는 정형외과 과장이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무술을 섭렵했다. 합기도, 킥복싱, 택견 등을 배웠고 경기에도 나갔다. 격투기 선수로 계속 활동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 얘기가 나왔다. “아버지가 무술에 ‘올인’하는 걸 원치 않으셨어요. 누구보다 무술에 애정이 많은 분이셨지만 그만큼 고통이 따르는 걸 잘 아셨기 때문이죠.”
광범 씨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50세 즈음부터 무릎, 손, 다리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충고 때문일까. 세 아들은 모두 무술을 즐기지만 업으로 삼고 있진 않다. 차남인 광수 씨(33)는 대한씨름협회에서 일한다. 막내 광화 씨(27)는 필리핀에서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과정을 밟고 있다.
격투기 링 닥터의 일당은 10만∼20만 원 남짓. 휴일 내내 고생하는 대가치곤 크지 않은 금액이다. 광범 씨는 “링 근처에만 가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돈을 주고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 보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링에 올라가기 직전 선수들의 눈빛을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선수들 눈빛에 담긴 비장함을 볼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무인들 돕기 위해 장학회 세우고 싶어
‘남편 또는 아버지’로서 최 선생의 모습은 어땠을까. 광범 씨는 아버지를 ‘매우 자상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크게 싸운 적이 없었어요. 자식들에게도 항상 따뜻한 분이셨죠.”
광범 씨는 꿈이 하나 있다. 무술은 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 돼 못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장학회를 세우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무패’의 무인도 있지만 수많은 3류 무인도 있잖아요. 저는 그저 무술이 좋다는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도록 평생 돕고 싶습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최배달은?
본명 최영의(사진). 192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24세의 나이에 전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일본의 가라테 10대 문파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무술인들과 겨뤄 한 번도 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00번 넘게 황소와 대결해 40마리가 넘는 황소의 뿔을 꺾은 것으로도 유명한 전설의 파이터.
황소 40마리 뿔 꺾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