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도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고 명의가 됐다잖아요. 우리 자매의 시신 기증 결정이 중앙대 의대생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4일 동생 홍임숙 씨(63)와 함께 사후 시신을 중앙대 의대에 연구용으로 기증키로 약속한 홍진(67) 씨는 “아직 기증 소식을 듣지 못한 가족, 친지들이 놀랄까봐 걱정된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들이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계기는 3월 서울 강서구의 ‘제1기 강서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강하면서. 강서구의 위탁을 받아 중앙대 행정대학원이 강서구민 등에게 제공하는 교양강좌다. 4남 4녀의 다섯째와 일곱째로, 6·25전쟁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홍 씨 자매에게 이 강좌는 오랜만에 배움의 즐거움을 주었다.
언니 홍 씨는 “제 고향이 충남 당진인데 초등학교 2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농사일에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해 학교를 그만뒀다”고 회고했다. 동생도 중학교에서 학업을 마쳐야 했다.
“동생과 나란히 앉아 사회 역사 건강 등 다방면의 수업을 듣는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어요. 이번 주 강의를 들으면서 벌써 다음 주 강의를 기다리게 됩니다.”(언니 홍 씨)
중앙대에 감사의 뜻을 전할 방법을 고민하던 언니 홍 씨는 평소 언론에서 해부용 시신 부족으로 의대생들의 연구에 고충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지난달 말 시신 기증을 결심했고, 동생 역시 언니와 마음을 합쳤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는 완강했다. 언니 홍 씨의 남편은 시신이 연구용으로 쓰인 뒤 화장된다는 얘기에 “그 뜨거운 것을 어찌 견디려 하느냐”며 반대했다. 자녀들도 어머니의 결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언니 홍 씨가 기증 결정의 취지를 설명하고 끈질기게 설득하자 결국 가족들도 기증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생 홍 씨는 “외동딸은 설득했는데 남편에겐 아직 기증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