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껍질 ‘새’ 만드는 껍질 공예가

  • 입력 2009년 6월 18일 17시 18분


땅콩 껍질 '새' … 밤 껍질 '벌레'… 껍질 공예가 홍승용 씨

홍승용 씨(45·택시기사)의 손길에 따라 땅콩껍질이 따오기, 펭귄, 청둥오리로 변신했다. '껍질 공예가' 홍 씨의 새들은 소박했지만 어느 하나도 똑같지 않았다.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홍 씨의 자택에서 작업 과정을 지켜보았다. 베란다 한 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탁자 위에는 공예품을 만들 만한 변변한 재료가 눈에 띄지 않았다. 땅콩 껍질로 만든 새 외에도 밤 껍질로 만든 장수하늘소 등도 보인다.

홍 씨는 어릴 적부터 새를 좋아했다. 12년 간 운영했던 화원에서 200여 마리의 새를 키우기도 했다. 화원을 닫고 새들을 모두 처분한 뒤 아쉬운 마음에 직접 새를 만들기 시작했다. 7년 전 택시 운전을 시작하면서 쉬는 날마다 만들어온 새가 1000마리가 넘는다.

그가 만든 새의 몸통은 땅콩 껍질, 머리는 은행 알이다. 날개는 담뱃갑 하얀 속지에 수채 물감, 포스터 물감, 아크릴 물감 등 세 가지 물감을 섞어 색을 입힌다. 담뱃갑을 쓰는 이유는 적당히 도톰한 두께에 색감이 잘 나타나서다. 담배 한 보루를 사면 나오는 빈 상자로 새 50마리 정도를 만들 수 있다.


새 다리와 발은 소주나 건강음료 등 병뚜껑을 돌려서 따는 알루미늄 마게인 ROPP 캡의 브릿지(연결부분)를 무거운 아령으로 납작하게 편 뒤 오려서 만든다. 자석 위에 사뿐히 올라앉은 새는 항상 다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새 다리를 묶은 얇은 전선과 자석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을 이용한 것이다. 새 가슴 털은 다이제스트 과자를 잘게 부순 조각을 발라서 보슬보슬한 느낌을 살린다. 낡은 붓 실을 뜯어 깃털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루 종일 꼬박 앉아 작업해도 새 한, 두 마리밖에 못 만든다. 물감이 마르고 본드도 마르길 기다렸다가 니스 칠을 하려면 꽤 인내심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시간은 걸리지만 돈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다 피운 담뱃갑을 쓰고 병뚜껑 밑 부분은 슈퍼나 약국에 가서 얻어 옵니다. 비타민 드링크는 노란색, 소주병은 초록색 종류별로 구해다 놓죠. 문방구점에서 본드나 자석을 사 오는 정도죠. 손재주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홍 씨가 만든 새는 지인들이나 택시에 탄 손님들이 신기해하며 하나, 둘씩 가져갔다. 가끔씩 선물을 하면 다들 어떻게 만들었냐며 놀라워한다고. 어느 취객은 새 1마리를 가져가며 5만원을 쥐어 주었다면서 껄껄 웃는다. 그러나 홍 씨는 작품을 팔 계획도, 전시회를 열 계획도 없다.

"앞으로 노인들에게 '돈 안 드는 예술'을 보급하고 싶어요. 주변에 흔한 재료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데다 미세한 손놀림을 집중해서 반복해야 하므로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거예요. 예술이라고 꼭 어려울 필요 있나요?"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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