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1시 백두산 서파(西坡·서쪽 산악) 등산로 입구. 56명의 청소년 백두산 탐방대는 천지(天池)를 향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마지막 관문으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1280여 개의 계단과 강한 바람. 바람을 이겨내며 계단을 오른 끝에 마주한 천지는 장엄한 자태를 마음껏 뽐냈다. 탐방대의 가쁜 숨소리는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서울시 SH공사가 주최하고 우리은행이 후원한 ‘고구려유적·백두산을 찾아서’ 탐방대 56명은 18일부터 23일까지 만주 벌판과 백두산을 돌아보는 탐방 길에 나섰다. 탐방에는 SH공사가 저소득층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Shift 아카데미’ 수강생과 노원구 공릉복지관, 강서구 방화복지관 공부방 소속 학생들이 참가했다. Shift는 SH공사의 장기전세주택 임대사업을 말한다. SH공사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해외여행 기회를 제공하고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천지는 10번을 올라도 맑은 날을 한 번 보기 힘들다는데 이날은 운이 좋게도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학생들은 “사진에서나 보던 백두산 천지를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백두산 천지까지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첫날 인천항에서 출발해 15시간 동안 배를 타고 중국 다롄(大連) 항에 도착한 탐방단은 곧바로 버스로 갈아타고 선양(瀋陽)으로 향했다. 선양을 거쳐 숙소가 있는 퉁화(通化)에 짐을 풀기까지 10시간이 걸렸다. 다음 날 천지를 들른 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데도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러나 탐방대는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을 두 눈에 담겠다는 일념으로 강행군을 이겨냈다.
21일 탐방대는 지안(集安)으로 발길을 돌려 광개토대왕비와 국내성, 장군총 등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의 현장을 둘러본 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단둥(丹東)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압록강철교 너머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북한 땅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학생들은 빌딩이 많은 단둥의 모습과는 달리 196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회색빛 신의주의 모습을 보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탐방대를 인솔한 고장열 SH공사 경영전략팀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학생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며 “앞으로 일본이나 연해주 쪽의 우리 문화유산을 탐방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두산=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