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파편에 다친 어깨와 팔의 통증을 파스와 진통제로 견디며 지금껏 살았습니다. 하지만 무공훈장을 안 준다고 나라를 원망한 적은 없습니다.”
6·25전쟁 때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최영학 씨(78·경기 구리시)는 25일 이상의 제3군사령관(대장)에게서 받은 화랑무공훈장을 어루만지며 감회에 젖었다. 1952년 10월 최 씨는 9보병사단 하사로 강원 철원군 서북방 395고지(백마고지)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다. 국군은 10일 동안 사투를 벌여 고지를 사수했다.
최 씨는 “당시 벙커에서 나왔다가 포탄 파편을 가슴과 다리에 맞아 서울 3육군병원으로 후송됐지만 파편을 다 제거하지도 못한 채 보름 만에 전장에 복귀해 적과 싸웠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그의 왼쪽 갈비뼈에는 아직도 파편 조각이 남아 있다.
최 씨는 백마고지 전투 무공으로 1954년 무공훈장 대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병적기록 관리 미비로 실제로 훈장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러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며 “이 땅에 다신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최 씨 외에도 송수영 씨(83·당시 이등중사), 이은영 씨(85·당시 일등중사) 등 참전용사 2명과 고인이 된 7명의 유족이 반세기가 넘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51년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전과를 올려 훈장 대상자가 된 송 씨는 “당시 적의 포탄에 다친 오른팔을 아직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면서도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다친 것이기에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2001년 숨을 거둔 부친 원광호 씨를 대신해 훈장을 받은 아들 대성 씨는 “강원지역 전투에서 중대원 대부분이 전사했고 아버님은 시신더미에서 신음하다 아군에게 구조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제라도 훈장을 받아 감사하고 아버님 영정에 바치겠다”고 말했다.
육군본부는 1955년부터 보훈단체 등과 협조해 무공훈장 찾아주기 활동을 벌여왔다. 무공훈장 대상자 16만2959명 가운데 지금까지 8만4292명에게 훈장을 찾아줬다. 무공훈장 대상자는 6·25전쟁 당시 일선 사단장에게서 약식증서만 받고 실제 훈장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육군은 설명했다. 아직 훈장을 찾지 못한 대상자나 유족은 육군본부 홈페이지나 육본 인사처리과 유가족 찾기 담당관(042-550-7333)에게 신청하면 된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