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반납’ 前 하키대표 김순덕 씨
“뉴질랜드 간 첫해 매일같이 눈물
‘모기향서 발화’ 아직도 납득 안돼”
“이제 미움과 원망은 다 잦아들었다.”
뉴질랜드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1999년 6월 30일 유치원생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고’ 때 큰아들 김도현 군(당시 6세)을 잃은 전 필드하키 여자국가대표 김순덕 씨(43)는 그해 겨울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김 씨는 한국을 떠나면서 아시아경기와 88올림픽 때 활약한 공로로 받은 체육훈장 기린장과 국민훈장 목련장도 정부에 반납했다. 아이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항의와 원망의 표시였다.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어요.” 김 씨는 뉴질랜드로 간 첫해를 그렇게 회상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죄인이 된 것 같았고, 남편은 도현이의 물건이나 둘째 태현이의 얼굴만 봐도 눈물을 흘렸어요. 누가 울기 시작하면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남편은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었고 태현이도 예전 같지 않았다. “어느 날 태현이가 자신의 그림을 그렸는데 가슴을 온통 시커멓게 칠했더군요. 그걸 보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언젠가 하늘에서 도현이를 만날 텐데 아이 앞에서 떳떳한 부모가 되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김 씨 부부는 2001년 여름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몸에 이상을 느낀 김 씨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가 임신 3개월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김 씨는 “처음에는 기쁨보다 도현이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나쁜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이를 낳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던 당시 심정을 ‘나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사고 후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던 김 씨 가족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서 웃음을 되찾았다. 2001년 11월 24일 태어난 아들 시현이는 도현이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김 씨는 “가톨릭 신자인 우리 부부가 ‘환생’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식당을 찾은 한 스님이 ‘간절히 바라면 죽은 사람이 그 집에 다시 태어나는 수도 있다. 도현이랑 시현이도 그런 모양’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씨는 “모기향 때문에 불이 났다는 정부의 해명을 부모들은 지금도 납득할 수 없다”며 “사고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탓인지 부모들은 어디에서 아이가 살아 돌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 씨는 지난해부터 도현이 기일에 주변 자폐아 가족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도현이를 잃고 세상을 힘들고 억울하게 사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됐어요. 도현이는 참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간 것 같아요. 나중에 도현이를 만났을 때 미안한 마음 없이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김 씨뿐 아니라 씨랜드 참사는 당시 아이를 잃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사고 소식을 아는 사람들 얼굴을 계속 보는 게 힘들어 직장을 옮긴 아버지도 있고,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해 지금까지 우울증 약을 먹는 어머니도 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도 새로 태어난 아이가 큰 힘이 됐다. 당시 아이를 잃은 18가족 중 13가족이 사고 후 새 아이를 얻었다. 아들을 잃고 딸 둘을 얻은 가족도 있고, 사고 후 성격이 난폭해져 주변 사람들과 멀어졌던 한 아버지는 새로 막둥이 아들을 얻으면서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김 씨는 전했다.
어린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사고 10년을 맞아 29일 처음으로 현장에 분향소를 차리고 합동위령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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