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하늘에 후덥지근한 날씨.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남산순환도로 위의 대학생들은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달음박질했다. 주위에선 “쉬엄쉬엄하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 행여 탈락할까 봐서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2009 대한민국 희망원정대(주최 LIG·서울시, 후원 동아일보·노스페이스)의 체력테스트 및 최종 면접이 열린 28일. 3km 달리기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저마다 “꼭 뽑아 달라”며 이를 악물었다.
올해 6회째인 희망원정대에는 15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1차 서류전형을 통해 120명이 추려졌고 다시 달리기와 면접을 통해 뽑힌 최종 합격자 96명이 30일 발표된다. 15 대 1이 넘는 경쟁률이다.
기초체력 테스트란 명목의 달리기였지만 학생들은 사력을 다했다.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바짓단까지 접은 학생도 있었다. 경남대 2학년 임자윤 씨(20)는 신발이 불편하다며 아예 양말 바람으로 내달렸다. 18분 만에 남자 1위로 들어온 선문대 2학년 김승환 씨(22)는 “하루 1시간씩 달리기 연습을 했다”며 만족해했다. 지방 학생들은 주로 1박 2일로 ‘상경 시험’을 봤다.
‘사서 고생한다’는 표현이 딱 맞다. 합격하면 다음 달 5∼24일(19박 20일) 경남 사천시∼서울의 499km를 폭염 속에 걸어야 한다. 휴대전화, MP3도 쓸 수 없고 신문과 방송도 접할 수 없다. 밤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 친 텐트(4인 1실)에서 자고 제대로 샤워도 못한다. 김진성 본부장은 “샴푸와 린스, 거울은 가져올 필요가 없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규율도 엄격하다. 이날 동국대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조교의 호통소리가 들렸다. 일부 여학생이 ‘통일 메뉴’인 비빔밥 대신 물냉면을 먹으려다 혼쭐이 난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추억을 쌓기 위해서’라는 참가 동기가 가장 많다. 하지만 취업에 유리한 경력을 쌓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참가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