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씨(48)는 바다와 여행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거의 매일 바다에서 놀았다. 성인이 된 뒤에는 윈드서핑을 즐겼다. 50세가 되면 사랑하는 아내, 두 아들과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는 계획을 세웠다. 불행은 그토록 좋아하던 여행 중에 찾아왔다. 1999년 가족과 자동차로 캐나다 대륙 횡단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고 왼쪽 복사뼈는 사라졌다.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파도 소리는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요트를 타고 파도를 넘는 상상은 현실이 됐다. 2006년 12월 대한장애인요트연맹이 창립되면서다.
6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올림픽 요트경기장. 휠체어에서 내린 그는 배가 묶인 나무 바닥에 손을 짚으며 연습용 요트에 올라탔다. 항구 내를 천천히 몇 바퀴 돌더니 이내 넓은 바다로 나갔다. 항구 내에서는 거의 불지 않던 바람은 탁 트인 바다를 만나자 돛을 세차게 흔들었다. 요트는 바람의 방향을 잘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돛의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쉴 새 없이 요트 좌우를 오가야 한다.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는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씨는 현재 장애인 요트 국가대표 선수다. 이날 경기장에는 같은 대표팀으로 주장을 맡고 있는 임영호 씨(50)를 비롯해 장준호 씨(41)가 훈련을 함께 했다. 현재 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100여 명인데 실제로 요트를 타는 선수는 40여 명뿐이다. 선수층도 얇지만 훈련 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장애인용 요트는 바닥에 배가 뒤집어지지 않게 하는 장치가 달렸다. 하지만 국내에 장애인용 요트는 한 대도 없어 훈련 중 물에 빠지는 일이 잦다.
대표팀의 목표는 2016년 장애인올림픽 메달이다. 아직 국제 수준과 격차가 있고 여건도 나쁘지만 바다와 맞서는 쾌감은 이들을 끊임없이 요트에 몸을 싣게 한다. 주장 임영호 씨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관심과 지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규 씨는 “50세에는 못하겠지만 60세가 됐든 그 이후가 됐든 꼭 요트로 태평양을 건널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