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밸리 사람들<10>연구기관 ‘홍보맨’ 4인

  • 입력 2009년 7월 23일 06시 01분


“과학 홍보? 한마디로 몸부림”

21일 대전 유성구 어은동의 한 식당. ‘한국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홍보맨 4명이 ‘번개팅’을 가졌다. 참석자는 정부출연연홍보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장영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홍보협력실장, 배재성 한국표준연구원 홍보팀장, 김희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홍보팀장, 이정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홍보팀장. 번개팅인 만큼 딱딱한 이야기보다 가벼운 사담이 오갔다. 이들은 ‘기자 반, 연구원 반’의 카멜레온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하지만 대화의 근간에는 ‘연구 성과의 극대화’라는 그들만의 사명감이 있다.

“과학 홍보에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장영진 실장). “연구 성과를 국민에게 알려주면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연구소도 더욱 업그레이드된다.”(이정임 팀장).

한때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대중과는 거의 소통이 없어 ‘대전의 섬’으로 불렸다. 하지만 1997년 23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홍보담당자들이 모여 ‘정부출연연홍보협의회’를 창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의 효율적인 홍보는 대전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업무 성격상 기자들과 항상 맞닥뜨린다. 자신들이 소속돼 있는 연구소의 연구성과를 기자들에게 알리고 취재를 지원하는 게 업무의 ‘0순위’. 그러다 보니 기자들과 얽힌 잊지 못할 사연도 많다. 소주잔이 오고가자 길게는 20년, 짧게는 5년 동안 홍보맨으로 지내면서 겪었던 뒷이야기가 쏟아졌다.

이공계 과학자들이 ‘득세’하는 연구소에서 특이하게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희철 팀장은 “엠바고(보도시점 제한)를 깬 친분 있는 기자와 소송을 벌일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장영진 실장은 “홍보맨은 보도자료 한 줄, 코멘트 한마디에도 신중해야 한다. 민감한 사안의 경우 홍보맨의 답변이 빌미가 돼 뒤에 법적 소송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정부 고위관료 아들이 연구소에 입사해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해당 관료가 사의를 표명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다. 감사결과를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호소해 결국 언론의 의혹을 잠재우기도 했다.

이정임 팀장은 “홍보맨들이 글 잘 쓰고 말 잘하고 대인관계까지 좋아도 2%가 부족하다”며 “연구원 전체의 재무, 회계적인 안목과 지식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對)언론 전략은 일종의 연구소 마케팅이기 때문에 홍보담당자는 연구소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유명 항공사 스튜어디스 출신인 그는 이젠 연구소 내의 웬만한 장비는 다 다룰 줄 안다고.

홍보협의회장을 맡았던 배재성 팀장은 “홍보맨들은 제3자의 의견을 폭넓게 취합할 수 있도록 평소에 나름대로의 인맥을 구축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들의 대화 속엔 홍보맨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이 짙게 배어 나왔다. 이들은 원장과 자신들의 생각 및 방침이 같아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했다. “유능한 홍보맨이 되려면 매일 아침 원장과 모닝커피를 마시고 국내외 출장 시 원장과 동행하면서 늘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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