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진출 순수 외국인, 중앙부처에 단 1명뿐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8분


지자체는 총 26명 채용
대부분 어학-관광업무 맡아
“다문화시대 채용 확대 절실”

‘21세기 묄렌도르프.’ 독일 출신으로 귀화한 이참 신임 한국관광공사 사장에게 붙여진 별칭이다.

파울 게오르게 폰 묄렌도르프와 이 사장은 모두 독일 출신으로 조선과 한국의 고위 공직에 올랐다. 묄렌도르프는 구한말인 1883년 통리아문의 참의(參議)에 올라 외교와 세관 업무를 맡았다. 당시 그는 ‘목인덕’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렸다.

이 사장처럼 한국 공무원으로 일하는 외국인들의 눈엔 한국 공직사회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 “일에 대한 열정 감탄”

영국인 앤드루 폴 존스턴 씨(40)는 부산시청 해외교류협력국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계약직(나급)이지만 외국인 공무원으로선 최장수인 셈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당시 부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부산시청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도 공무원이 될 수 있게 한 2002년 국가공무원법 개정의 첫 수혜자였다. 그는 공직에 전념하기 위해 자신의 동아대 전임교수 직을 전임강사로 낮췄다.

그는 한국 공무원들에 대해 “일이 남아 있으면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라도 일하는 봉사정신이나 회식처럼 팀워크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장점”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경직된 조직문화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 조직문화의 전통 때문인지 윗사람에게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전달하지 못한다. 기분이 나빠도 좋은 척하거나 아이디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호 소통이 없으면 조직 발전에 이롭지 못하다.”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미국인 더글러스 빈스 씨(49)는 2004년부터 영어를 가르쳐왔다. 빈스 씨가 꼽은 한국 공무원의 특징은 ‘부지런함’과 ‘조직에 대한 예의’.

그는 “한국인 공무원들은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많아 대부분 열심히 공부해서 놀랐다”며 “상사에게 지나치게 깍듯한 태도 때문에 가끔 수업 분위기가 불편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 지방자치단체의 수요 늘어

각 지자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외국인 공무원 수요도 늘고 있다. 존스턴 씨를 포함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본부의 폴 라나리 씨(캐나다), 안동시 관광사업과의 오가타 게이코 씨(일본) 등 26명이 지자체의 관광이나 투자 유치, 대외 교류 부문 등에서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5년 전 오가타 씨를 고용했던 안동시청의 한 관계자는 “오가타 씨가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탁월한 업무능력을 보여 중국인 1명을 추가로 채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공직 진출은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많다.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공무원 중 교포를 제외한 ‘순수’ 외국인은 빈스 씨 한 명뿐이다. 그나마 외국인 공무원들의 업무 영역이 대체로 어학이나 관광 등에 한정되어 있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존스턴 씨는 “활기차고 국제적인 부산시의 발전에 많이 기여하고 싶지만 어학이나 홍보의 계약직이다 보니 한계가 많다”며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고 각 국가 시스템의 장점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로 진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조범철 인턴기자 고려대 언론학부 4년

최부현 인턴기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년

‘과거제 주도’ 쌍기… ‘총포 제작’ 박연…
고려-조선시대에도 외국인 인재에 문호 열어

고려, 조선시대 조정도 필요한 경우 외국인 인재들에게 과감히 공직의 문호를 열었다.

고려 광종(925∼975)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한 쌍기(雙冀)는 중국 후주 사람이었다. 쌍기는 사신단 일행으로 고려를 방문했다가 병에 걸려 고려에 남게 됐다. 과감한 국정개혁을 모색하던 광종은 쌍기를 원보한림학사(정4품·지금의 대통령정책비서관실 비서관격)로 발탁했다. 과거제 도입을 비롯해 백관의 공복 제정, 노비안검법 실시 등 광종이 주도한 개혁 정책은 쌍기가 전해준 후주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던 주저(周佇)는 상선을 따라 고려를 방문했다가 목종의 눈에 띄었다. 외교문서 작성능력이 돋보였던 그는 지금의 외교통상부 장관과 비슷한 예부상서에까지 올랐다. 병자호란(1636∼1637) 때 훈련도감 무기제조 기술자로 활약했던 박연은 원래 네덜란드 선원(본명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이었다. 일본으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흘러온 그는 뛰어난 총포제작기술을 인정받아 훈련도감 무관으로 기용됐다. ‘박연’이라는 이름은 인조의 하사품이었다. 그는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 일행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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