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째 같은 가위… 일본서도 이발하러 와요”

  • 입력 2009년 8월 5일 02시 56분


3대 83년 전통 성우이용원 운영
이남열 씨 ‘추억의 거리’ 이발 출장

그는 45년 된 일본제 브라운표 가위, 30년 넘은 빛바랜 빗을 꺼내 들었다. 찰칵 찰칵, 가위 소리는 리듬감 넘치고 경쾌했다. 머리를 자르는 중간 중간에 분통에 담긴 감자가루를 손님의 머리카락에 발랐다. 어느 정도 더 잘라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법이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이번엔 130년 된 독일제 쌍둥이표 면도칼을 꺼냈다. “130년 됐지만 아직도 A급이에요. 이걸로 면도하면 전혀 따갑지 않고 시원∼하지요.”

4일 오후 2시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에 만들어 놓은 화개이발관. 45년째 기계를 쓰지 않고 전통 이발을 해 오고 있는 이남열 씨(60)가 이발 출장을 나왔다. 이 씨는 83년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중구 만리동 성우이용원을 3대째 운영해 오고 있는 이발사. 그가 국립민속박물관이 어린이박물관 현판식과 추억의 거리 개막식을 기념해 마련한 ‘1일 머리깎아주기’ 행사에 특별 출장을 나온 것이다.

이 씨는 기계 없이 가위만 사용한다.

“가위로만 하는 것이 우리 전통 이발입니다. 지금의 이발은 기계에 의존하는 인스턴트식이죠. 전통 방식으로 이발을 하면 머리카락이 자라도 처음 깎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지저분해지지 않아요.”

이 씨의 소문은 전국 곳곳에 자자하다. 그는 “서울 사람뿐 아니라 마산 진주 제주에서도 소문 듣고 찾아온다”며 “전통 방식의 이발이 그리워 일본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날 첫 손님은 국립어린이박물관 직원인 김형준 씨(30). 늘 미장원만 다녀 이날 이발소가 처음이라는 김 씨는 “우리나라 최고의 이발사 선생님이셔서 특별히 머리 모양을 주문하지 않았다”며 “자르는 느낌이 전혀 나지 않고 가위소리만 들린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 씨는 “40년 넘게 이발을 하다 보니 가위가 지나가면 절로 머리 모양이 난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추억의 거리를 지나가던 중년 남성들은 이발관을 기웃거리며 “이런 데서 이발 참 많이 했지”라고 중얼거렸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은 “저도 깎아주세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날 오후 이발소, 다방, 양장점, 식당, 만화방, 사진관, 한약방, 포목전 등 1960, 70년대 일상풍경을 재현한 추억의 거리에선 빈대떡 부치기, 뻥튀기, 뽑기, ‘아이스케키’ 먹기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 씨는 이날 모두 7명의 머리를 깎았다. 더운 날씨였지만 영업을 마칠 때까지 그의 가위소리는 시종 경쾌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김인정 인턴기자 연세대 영문과 4학년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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