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6m) 등정 후 하산하다 사망한 고미영 씨는 등반 파트너였던 김재수 대장(46·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앞에서 세 번 울었다. 두 번은 개인사를 얘기하면서, 한 번은 낭가파르바트에 오르기 전 베이스캠프에서 언론과의 인터뷰 중 울었다. 고 씨는 “김 대장이 나를 위해 동영상 촬영 등 온갖 고생을 다하며 동상까지 걸렸다. 그런데 항상 스포트라이트는 나만 받는다”며 미안해했다.
김 대장은 2007년 5월 에베레스트(8850m)부터 낭가파르바트까지 고 씨와 히말라야 10개 봉 정복을 함께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성 산악인 고미영’만 기억했다. 안타깝게도 김 대장은 고 씨가 저세상으로 떠난 뒤에야 관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김 대장은 고 씨와 함께 산에 오를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 씨를 ‘초록빛 꿈을 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이제 고인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하고자 히말라야에 오른다. 27일 안나푸르나(8091m) 등정을 위해 출국하는 그는 다음 달 5일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9월 말에서 10월 5일 사이에 정상 등정에 나선다. 고 씨를 추억하고자 원정대의 이름은 고 씨의 성을 딴 ‘Go Expedition(고 탐험대)’로 지었다.
김 대장은 고 씨의 사진을 넣을 수 있는 등산복을 준비했다. 입는 옷마다 부착할 작은 사진 10장과 큰 사진 2장도 준비했다. 큰 사진은 등반 전 산악인들의 안전과 성공을 기원하는 전통 의식인 라마제를 위한 것이다. 고 씨의 49재 날인 9월 7일에 라마제를 지낼 계획이다.
그는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고 씨의 꿈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면서도 “고 씨의 가족들은 미영이가 하고자 한 일을 누군가 대신해준다면 그게 나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영혼이란 게 있다면 미영이의 영혼은 내가 해주길 바라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다. 이번 산행은 고 씨 가족들에게는 위안이 되고, 김 대장에게는 마음의 빚을 덜어내는 과정인 셈이다.
김 대장은 안나푸르나를 정복한 뒤 내년에는 가셰르브룸Ⅰ, 가셰르브룸Ⅱ와 초오유를 등정할 예정이다. 그는 “많은 사람이 미영이의 목표가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인 줄 알고 있지만 원래 그의 목표는 14좌 최단 기록 등정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이 예정대로 내년 7월에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한다면 그는 3년 3개월 만에 이 봉우리들을 모두 오르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그때까지 고인의 사진을 품고 산에 오른다. 하지만 이번 안나푸르나를 비롯해 14좌 완등을 하기 전까지는 정상에 사진을 묻지 않을 생각이다. 사진을 묻으면 영혼도 떠나버릴 것 같아서다.
한편 오은선 대장은 28일 KBS 신관에서 안나푸르나 원정대 출정식을 갖는다. 그는 다음 달 14일 출국한다.
과천=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