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정말 재미있으셨어요?” 성영 군(14)의 목소리가 오늘도 잠겨 있다. 눈만 뜨면 노래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는 이성영 군의 꿈은 뮤지컬 배우다. 28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수서청소년수련관 청소년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넌센스’ 공연에서 주인공인 원장수녀 메리레지나 역할을 맡아 공연을 펼쳤다.
어렸을 때부터 끼가 넘쳤던 이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했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에 어렵게 합격한 기획사를 포기했다. 이 군의 아버지는 심한 천식을 앓아 장애 2급 판정을 받고 집에서 요양 중이다. 어머니가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김밥 집에서 밤새 일을 해 벌어오는 수입으로 다섯 식구가 산다.
한창 예민한 10대, 꿈이 있어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지만 이 군은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집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귀여움을 받는 애교덩어리지만 집에서는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챙기는 의젓한 아들이다. “가난한 게 부모님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얼른 뮤지컬 배우로 성공해서 누구보다 성실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요.”
28일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모두 이 군처럼 뮤지컬에 재능은 있지만 집안이 어려워 꿈을 접어야만 했던 학생이다. 2007년 SK텔레콤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한 ‘해피뮤지컬스쿨’에서 무료로 교육을 받으며 다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울 수 있었다. 해피뮤지컬 스쿨 1, 2기 학생들은 6개월씩 수업을 마치고 졸업을 했지만 자신들이 받은 선물을 되돌려 주고 싶어 졸업생 10명이 모여 방학 동안 공연 준비를 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여름방학을 반납했어요.” 방학식 다음 날부터 공연 준비가 시작됐다. 일요일만 빼고 매일 나와 연습했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연출가 선생님이 부르기도 전에 학생들끼리 아침부터 모여 노래를 하고 춤을 췄다. “집에 돌아갈 때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버스에만 앉으면 곯아떨어질 정도로 온힘을 다했어요.”
뮤지컬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스태프도 재능 기부로 이번 뮤지컬 공연에 참여했다. 뮤지컬 ‘돈주앙’ ‘하이스쿨뮤지컬’의 연출가 김규종 씨와 한국뮤지컬대상 등을 수상한 유명 음향감독 김기영 씨, 의상 디자이너 조문수 씨 등 쟁쟁한 스태프가 이번 공연의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다.
학생들은 방학 동안 그렇게 연습을 하고도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한지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하지만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자 떨리는 기색 없이 당당히 공연을 해냈다. “무대 위에서 관객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니 나처럼 꿈을 갖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하란 법은 없잖아요.” 무대 위에 오른 아이들도, 무대 아래 관객석에 앉은 이들도 영구임대 아파트에 산다. 방학 내내 이어진 연습에 목소리가 쉬어버린 이 군은 “가난하지만 음악과 춤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뮤지컬 배우를 꿈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