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1993년 처음 발을 디딘 곳.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곳. 하지만 생사의 경계를 수백 번 넘나들게 한 그곳. 산악인 오은선 씨(43·블랙야크)에게 히말라야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저를 품어줘서 고맙고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 자체로 사랑한다”고 했다.
‘산과 결혼한 것 아니냐’는 말을 종종 들었던 오 씨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해발 8091m·아래 사진) 등반대장으로 14일 네팔로 출국한다. 이번 등정에 성공하면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르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난달 13번째 봉우리인 가셰르브룸Ⅰ(8068m) 등정에 성공한 뒤 귀국하자 제게 많은 관심이 쏟아졌죠. 동료 산악인과 언론은 물론 일반 국민들로부터 과분한 격려를 받았습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늘었어요.”
그동안 오 대장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한 해에 4개씩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며 온 힘을 다했다. 주위에서 우려의 목소리와 시샘의 눈길이 쏟아지기도 했다.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둔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정상에 서기 전까지는 ‘최초’라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해요. 그저 내가 그리워하던 곳에 오른다는 생각으로 갈 겁니다.” 얼마 전까지는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을 때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그것조차도 스트레스였단다. 그는 “정상에 서면 어떤 느낌일지, 누가 떠오를지, 무슨 말을 하게 될지는 가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오 대장은 대학교 2학년 때 산악부원으로 북한산 인수봉을 오른 것이 제대로 등반을 한 첫 경험이다. 그때는 물론이고 2004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8850m)를 단독 등정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주목받는 사람이 될 줄 몰랐다. 그런 걸 바라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산이 좋았고 산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은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안나푸르나 등정 후에는 책을 한 권 낼 생각이다. 처음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는 ‘내가 무슨 책을 써’라며 흘려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후배 산악인과 꿈 많은 여성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 대장은 21일께 안나푸르나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뒤 캠프 1, 2, 3을 차례로 세우며 루트를 점검하게 된다. 정상 도전은 다음 달 10∼25일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오 대장과 함께 네팔로 떠나 등정 속보 및 다양한 이야기를 현지에서 생생히 전할 예정이다. 오 대장에게 이번 안나푸르나 등정은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사람에게 전하는 가슴 설레는 프러포즈가 아닐까. 소중한 만남을 위해 그가 간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오은선은 누구
△생년월일: 1966년 3월 5일
△출생지: 전북 남원시
△체격: 155cm, 48kg
△가족: 미혼(1남 2녀 중 장녀)
△학력: 서울 중곡초교-휘경여중- 송곡여고-수원대 전산학과
△등반 시작: 대학교 1학년 2학기 산악부에 가입하면서
△별명: 철의 여인, 날다람쥐, 은빛 천사
△평소 즐기는 운동: 수영,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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