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85>‘愛人敬天’ 도전 40년

  • 입력 2009년 9월 15일 06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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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유지 서울 영등포 공장의 무수프탈산 생산시설 전경. 이 공장은 화학부문을 중심으로 애경이 사업을 다각화하며 성장하는 데 모태가 됐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애경유지 서울 영등포 공장의 무수프탈산 생산시설 전경. 이 공장은 화학부문을 중심으로 애경이 사업을 다각화하며 성장하는 데 모태가 됐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8>化學報國<상>
석유화학 발빠르게 과감한 투자
수지 제품 잇단 자체개발 개가
70년대 ‘호마이카’ 붐타고 대박

대부분의 소비자는 ‘애경’이라고 하면 비누나 샴푸 화장품 백화점을 떠올린다. 그러나 애경그룹을 떠받치는 숨은 주력사업은 석유화학사업이다. 애경은 1960년대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태동기를 연, 한국 석화업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석유화학공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하고 공장용지 정지공사에 나선 때가 1966년이다. 당시 상공부가 석유화학공업 개발계획을 발표한 때가 1969년, 석유화학공업육성법을 제정 공포한 때가 1970년이었다. 대부분의 산업이 정부 주도로 움직이던 당시, 애경의 석화산업 진출은 무척 앞서 나간 결정이었다. 남편은 당시 한국 경제 발전의 속도로 미루어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남편은 외부 차입이나 은행 융자를 통해 기업의 운영 자금을 조달하지 않는다는 원칙주의자였지만 석유화학 공장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원칙을 깼다. 당시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만나 독일에서의 차관 도입 승인을 얻어내기도 했다.

공장 건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장 건설을 추진하던 도중 가까운 일본의 무수프탈산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사고가 일어난 공장을 중심으로 반경 4km까지 사고 여파가 미칠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러나 사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아 공장 건설을 준비하던 애경 임직원으로선 불안감이 컸다. 이 때문에 공장 건설은 한동안 지연됐다.

우여곡절 끝에 1968년 건설된 애경유지의 무수프탈산 공장은 1970년 제정된 석유화학공업육성법에 의거한 제1호 등록업체로, 국내 석유화학공업의 선구 기업으로 기록됐다. 현재 화학원료 계열사의 주요 생산품목이자 수출품목인 합성수지 도료는 1962년 개발했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페인트 생산업체는 페인트의 주원료인 알키드 수지를 수입해서 사용했으나 애경은 이들보다 앞서고자 서독 회사와 기술제휴를 해 알키드 수지를 생산했다. 얼마 뒤 국내 경쟁 페인트 생산업체들이 알키드 수지를 자체 생산하면서 애경은 페인트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68년 도료제품의 주원료인 무수프탈산 공장을 가동했다. 이후 합성수지 도료제품을 비롯한 건축용, 목공용, 자동차용, 특수 도료 등 다양한 도료제품을 확대 생산했다. 도료부문 사업은 1973년 절정기를 이루면서 전 도료제품이 KS마크를 획득했다. 애경은 또 국내 최초로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를 개발했는데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의 개발과 시장 개척은 오늘날 애경화학을 낳는 원동력이 됐다.

나중에 폴리코트로 이름이 바뀐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는 당시 국내에 ‘호마이카(formica)’ 붐을 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뒀다.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는 호마이카로 불렸는데 가구 등에 호마이카를 바르면 자개장처럼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면서도 가격은 자개장보다 저렴해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1960, 70년대 결혼을 한다고 하면 호마이카 장롱을 구입하는 게 유행이었다. 호마이카 붐을 타고 애경은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 대량생산 체제에 돌입했고 시설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서울미원이 경쟁적으로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애경은 강화 플라스틱 생산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이 강화 플라스틱 사업은 업계 처음으로 전자동 생산체제를 구축해 KS마크를 획득했다.

이같이 석유화학산업이 차근차근 정착해 나가면서 남편은 울산 석유화학단지에 땅을 조금 사놓고 삼경화성(현 애경유화)이라는 회사를 세웠지만 갑작스레 세상을 뜨면서 공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삼경화성은 무수프탈산과 가소제, 수마레인산을 제조했다. 남편의 사후에 애경의 미래 성장동력을 화학으로 설정한 나는 삼경화성 공장을 완공했다. 그 뒤로도 플라스틱 용기류를 생산하는 성우산업(현 에이텍), 폴리에스테르 수지를 제조하는 애경화학, 합성세제 원료를 생산하는 애경쉘(현 AK켐텍), 도료메이커인 애경공업(현 AK켐텍), 애경유지공업의 사업을 그대로 이은 애경산업(현 애경)을 차례로 설립했다. 순수 과학의 대표 격인 화학은 이렇듯 애경의 든든한 뿌리가 돼 주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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