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간 수술 전문의를 꿈꾸는 광주 매곡초등학교 6학년 최다영(12)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주위에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을 많이 봐왔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의사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어요. 특히 제 친척 중에 간이 좋지 않은 분이 몇 분 있어서 저는 나중에 외과의사가 되어 사람들의 장기를 치료하고 싶어요.
하지만 의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의사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만 한다던데 벌써부터 공부하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요. 저희 집은 엄마가 장애로 일을 할 수가 없어 국가에서 주는 생활비로 생활하고 있는데 학원비가 많이 올라 돈이 많이 들어요. 힘들 때면 꼭 의사가 되어 많은 사람을 치료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곤 합니다.
서경석 의사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왜 의사가 되셨고 이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때를 알고 싶어요. 또 의사라는 분야에서 최고인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의사란 어떤 직업인지도 알고 싶어요. 저의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서경석 의사선생님과 만나는 것을 계기로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서울대 서경석 교수 조언
▼“놀면서 체력부터 키우렴”▼
초등생땐 많이 뛰어놀아야
아픈 몸 치료도 중요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 길러야
파란 수술복 차림의 서경석 교수(49)가 18일 서울대병원 본관 5층 회의실에 들어섰다. 긴장된 표정으로 서 교수를 기다리고 있던 다영이에게 서 교수는 대뜸 “수술실 구경하러 갈래?” 하고 물었다. 눈이 동그래진 다영이를 이끌고 서 교수는 2층 수술실로 향했다.
“저기 네 또래의 남자아이가 간 이식수술을 받고 있구나.” 간이식수술 경력만 15년으로 현재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분과장을 맡고 있는 베테랑 의사인 서 교수는 다영이에게 수술대 위의 환자를 보여줬다. 생전 처음 수술복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쓴 다영이는 멈칫하며 쉽게 수술대로 다가서지 못했다. 서 교수는 “간이 일반 사람의 2배 이상으로 커지는 ‘당원축적증’ 때문에 자기 간을 들어내고 아버지 간을 이식받은 13세 남자아이”라며 다영이에게 막 꺼낸 간을 보여줬다. 머뭇거리던 다영이는 서 교수에게 “들어낸 간은 무게가 얼마예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 교수는 웃으며 “이 간은 정상인의 2배가 넘는 2kg”이라고 말했다.
5층으로 돌아온 다영이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온 질문지를 꺼냈다. 빽빽했다.
“왜 의사가 되셨나요?” 다영이의 첫 질문이었다. 서 교수는 “아버지가 내과의였는데 어릴 때 참 멋있어 보였다”고 답했다. “막상 의과대학에 들어와 보니 내과는 환자의 차도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반면 외과는 환자가 나아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외과의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그럼 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예요?” “환자가 눈에 띄게 나아질 때지. 오늘 수술한 남자 아이의 동생도 같은 병으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는데 어느덧 병원 안을 뛰어다니며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씩씩하게 인사도 한단다.”
의사가 되고 싶은 다영이는 서 교수가 어떻게 의과대학 입시를 준비했는지도 궁금해했다. “사실 우리 때만 해도 의대보다 공대 입학점수가 더 높을 때가 있을 정도로 지금처럼 의대 입학이 어렵지 않았어. 난 다영이만 할 때 성적표에서 수우미양가 중에 ‘양’과 ‘미’도 많이 받았단다.” 서 교수가 멋쩍게 웃었다. “의사도 과학자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단한 천재여야 하는 것처럼 과대평가돼 있는 것은 문제야. 사실 높은 성적보다 정확함과 성실함, 체력이 더 요구되는 직업이 의사란다.” 다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철들고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때까지는 하고 싶은 것 많이 하면서 많이 놀았으면 좋겠구나.”
의사를 꿈꾸는 다영이는 “과거로 돌아가도 외과의사를 할 거고 은퇴하면 한적한 시골의사로 죽을 때까지 환자를 돌보고 싶다”는 서 교수의 말에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다영이는 마지막으로 다소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의사란 어떤 사람인가요?” “의사란 어떤 방법으로든 남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픈 몸을 치료해주고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아주면서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편하게 해주는 거야. 그래서 큰 의사일수록 그 사람의 병뿐만 아니라 주변환경까지 모든 것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단다.”
이야기를 마친 서 교수는 다영이를 자신의 연구실로 안내했다. 책과 보고서들로 비좁은 방 한 서랍장에서 서 교수는 작은 상자를 꺼내왔다. 서울대병원에서 최근 서 교수에게 공로상을 수여할 때 함께 선물한 탁상시계였다. 서 교수는 다영이에게 시계를 건네며 “내가 원로 교수할 때쯤 네가 인턴으로 들어오겠지?”라며 미소를 지었다. 다영이는 미래에 펼쳐질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듯 밝게 웃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