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우리들에게 긴장을 요구해. 젊은이들은 역사가 요구하는 긴장을 먹고 살아야 클 수 있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77)이 29일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냈다. 그는 이날 낮 1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젊은 시절 내 이야기를 들으며 발을 구르던 이들이 지금은 60대가 됐다”며 “그들이 자식들과 함께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 자서전은 480쪽 분량으로 ‘퉁차기(축구)’ ‘한살매(한평생)’ 등 순우리말로 써내려갔다.
백 소장은 “제국주의, 역사 이런 단어가 지금은 익숙하지만 실은 150년 정도밖에 안 된 말”이라며 “어떤 이들은 내가 순우리말 단어를 너무 꾸며낸다고 하지만 영어, 프랑스어에서는 하루에도 몇 개씩 새 단어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다.
“‘파이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남과 싸우자, 해를 입히자는 게 어떻게 우리말이야. 이런 말이 나도는 사회 분위기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좌절, 절망하고 있어.”
백 소장은 자신의 인생을 “좌절과 절망을 먹으며 잔뼈 굵은 삶”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내가 북쪽 송이버섯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걸 아무도 안 보내주더라”며 “고향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실향민의 애환을 말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전설이나 신화 등 우리 민족에게 풍부한 옛 얘기를 글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백 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6·25전쟁 직후 전쟁고아들을 모아놓고 ‘달동네 배움터’를 열었던 일, 군사독재 당시 고문을 받았던 일 등을 회상했다. 1987년 대선 때 후보단일화 무산에 대해서는 “1000년에 한 번 온 기회를 잃은 것”이라고 평했고 2000년대 정부의 대북정책 과정에서 소외된 일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자작시 ‘한 발자국만 더’를 읊으며 직답을 피했다.
이날 ‘아리아리’라는 말로 건배를 제의한 백 소장은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라, 그래도 없으면 길을 만들어라’는 뜻”이라며 “인생은 ‘아리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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