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국과수 법의학부장 ‘과학수사 대상’ 수상
18년간 1만여건 부검… “의사보다 보수 낮지만 매력”
3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4일 과학수사의 날을 맞아 과학수사장비 전시가 열렸다. 한 경찰이 미세증거물 분석에 사용되는 편광현미경을 통해 섬유질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 사진 더 보기
2003년 12월 대전에서 여대생 A 씨가 애인의 집 목욕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옷은 모두 벗은 상태였고, 화장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처음에는 목욕을 하다 쓰러져 죽은 것으로 추정됐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들은 여대생의 몸에 난 상처에 주목해 타살의 증거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최초 발견자인 A 씨 애인의 어머니가 아들이 범인일까 두려워 여대생의 시신을 깨끗이 씻긴 상태였다. 소량의 질액만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서였기에 분석을 거듭했다. 결국 범인을 특정하지는 못했지만 질액에 섞인 정액에서 범인 부계의 유전자를 확인했다.
경찰은 참고인 중 A 씨 애인의 사촌인 B 씨 손등에 난 상처에 주목하고 영장을 발부받아 상처 주변의 피부를 분석했다. 상처가 아문 정도 등으로 판단했을 때 A 씨가 사망한 날에 생긴 상처일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은 목욕탕에서 작은 혈흔도 발견했다. 결국 대법원은 과학적인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A 씨를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B 씨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과학수사의 날(4일)을 맞아 법의학 분야 ‘과학수사 대상’을 수상한 서중석 국과수 법의학부장(52·사진)은 3일 인터뷰에서 대전에서 발생한 여대생 성폭행 살인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 부장은 “법의학팀이 흔적을 자세히 조사하고 과학적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해 결국 범죄를 입증해낸 사건”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서 부장은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1년 11월 국과수 부검의로 임용된 이후 18년 동안 법의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부검을 한 횟수를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1만 건 이상의 시신을 직접 부검하거나 부검을 지도해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서 부장에게 시신은 ‘스승’이나 다름없다. 부검은 억울한 죽음을 규명해 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법의학자도 부검을 계속하면서 시신으로부터 범죄의 흔적을 배우게 된다는 것.
최고의 법의관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서 부장이지만 그에게도 진로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국과수를 떠나 평범한 의사가 되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면서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법의학자로 붙들어 놓은 것은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였다. 서 부장은 “한 사건으로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온 적도 없었지만 한국 최초로 법의학자와 유전자 전문가, 인류학자들이 머리를 맞대 사건을 해결하면서 법의학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제61회 과학수사의 날인 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서 부장과 과학수사발전연구회(법과학 분야), 서울지방경찰청 이상준 경사(과학수사 분야)에게 각각 과학수사 대상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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