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에 수능… “꿈 접기에는 너무 일러요”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1일 03시 00분


■ 조재구 할머니 부푼 기대
73세에 뒤늦게 공부 시작
“일본어 가이드 봉사하고싶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0일. 떨리는 가슴으로 시험을 기다리는 것은 10대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주부학력인증학교인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고의 조재구 할머니(76·사진)도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꼼꼼히 메모해 온 노트를 바라보는 눈빛은 평소보다 더욱 진지하기만 했다.

“달리기 2등만 해도 속이 상해서 잠이 안 올 만큼 욕심이 많았는데 공부를 계속할 수 없어 울기도 많이 울었죠.” 조 할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 욕심이 남달랐다. 하지만 전통적인 유교 집안인 데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보통학교(현재의 초등학교)만 나와도 용하다고 여기던 때였다. 꿈 많던 그도 부모님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일을 돕다 중매로 결혼을 했고 2남 3녀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는 공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던 2006년 초,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큰아들이 갑작스레 그의 앞에 입학원서를 내밀었다. “어머니, 늦었지만 하고 싶었던 공부하셔야죠. 너무 부담 느끼시지 말고 개근만 하세요.”

그렇게 73세의 나이로 주부학력인증학교인 일성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삶의 활력이 솟아났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을 지키며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가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시작하니 생활도 규칙적으로 변하고 자신감도 생겼다. 길거리를 지나가며 만나는 간판이나 외래어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새로운 기쁨이었다. 그렇게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마포까지 4년 개근을 하며 공부를 계속해 온 조 할머니는 이번 수능에 도전하기로 했다. 전문대인 인천 경인여대 일본어학과에 수시로 합격은 했지만 수능 성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냥 많이 바라지는 않고 아는 것만 잘 풀었으면 하죠. 떨릴 줄 알았는데 막상 덤덤하네요.”

조 할머니는 공부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면 아예 인천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다. 열심히 공부해 4년제 대학에 편입을 하고 싶다는 희망도 조심스레 풀어놓은 그의 꿈은 수능 뒤로도 ‘진행형’이다. “제가 보통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일제강점기라 학교에서 일본어만 써야 했죠. 당시에는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는데 어릴 적 배운 거라 머리에 많이 남아있어요.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가르쳐 주거나 관광객들에게 일본어 가이드를 하는 등 봉사도 하고 싶어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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