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36>‘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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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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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신 회장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뿌듯한 일로 여성기업지원법 통과와 연합회에서 협회로의 조직 전환을 꼽았다. 장 회장이 1997년 여성경제인박람회 설명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 제공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뿌듯한 일로 여성기업지원법 통과와 연합회에서 협회로의 조직 전환을 꼽았다. 장 회장이 1997년 여성경제인박람회 설명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 제공 애경그룹
〈59〉여경협을 떠나다
여경협 안정궤도에 올라서자
“내 역할은 씨 뿌리는 것으로 만족”
1999년 말 만류 뿌리치고 사퇴

코엑스에서 여성창업벤처기업 박람회를 열었다. 1999년 11월 12∼14일이었다. 박람회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회원사를 설득하고 안내하는 등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노승현 부회장(현 대한도시가스공사 회장)과 함께 밤을 새우며 준비했다. 회원사 가운데 제품이 있는 회사는 박람회에 제품을 출품하게 했고, 제품이 없으면 회사를 소개할 부스를 만들었다. 여경협이 어떤 곳인지 홍보하는 부스와 함께 창업을 준비하는 여성에게 다양한 조언을 해주는 부스도 마련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여성경제단체가 코엑스에서 박람회를 개최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코엑스에 찾아가 협조를 구했다. 코엑스는 가장 넓은 메인 공간을 흔쾌히 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다. 박람회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으로 뜨거웠다. 박람회를 찾은 여성은 여대생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했고, 초유의 대규모 여성경제 행사에 호기심을 느낀 많은 언론이 취재했다.

현재 여경협은 전국에 104개의 여성창업 보육실을 운영하고 창업교육 창업컨설팅 등 예비창업자 교육을 진행한다. 저소득 여성가장이 창업을 희망하면 연 3%의 낮은 이자로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여성기업을 박람회와 패션쇼에 참여하도록 연결해준다. 여성경영자가 앞으로 기업을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을 함께 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멘터링 제도도 운영한다. 매년 두 차례씩 전국 여성경제인을 대상으로 경영연수를 실시하며 수시로 조찬 세미나를 해 회원사에 최신 경영 흐름을 알린다.

여경협이 자리를 잡으면서 협회 일은 회원에게 돌려주고 내 자리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1999년 12월 퇴임을 발표했다. 소속 회원과 전국의 지부장이 “이제 겨우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만두면 어쩌냐”고 야단이었다. 이사회에서도 “어려운 일을 다 해내고 이제 와 그만두려느냐”며 말렸다. 여성경제인연합회(여경련) 회장을 맡는다고 했을 때 심하게 반대했던 회사 임원들도 “아직은 때가 아니지 않느냐”고 만류했다. 내 결심은 확고했다. “내 역할은 씨를 뿌리고 싹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것까지다. 그 다음은 더 젊고 능력 있는 여성 CEO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협회를 이끄는 것이 더 좋다.”

여경련 마지막 회장이자 여경협 초대 회장으로 재임한 35개월 동안 여성기업지원법을 명문화하고 여경협을 만들어 내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일은 내가 가장 뿌듯하게 여기는 성과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여성 경제인의 기업 경영에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힘이 된다고 믿는다.

여경협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인 보람도 컸다.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사회적인 힘을 낼 수 있음을 보았다. 선사시대부터 남자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냥에 나섰고 여자는 동굴 안에서 가사를 돌보고 아이를 키웠다. 약한 인간이 거대한 맹수를 때려잡기 위해서는 한쪽에서는 몰고 한쪽에서는 함정을 파놓고 준비하는 체계적인 작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는 협업에 능하고 여자는 모성애가 강한 성향이 유전자에 녹아 있는 듯하다.

지금은 수렵시대도, 농경시대도 아닌 첨단 정보화 사회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능력, 성실함을 지니고 있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경영활동을 하는 데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경협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이와 더불어 국내 여성경제인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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