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허영섭 녹십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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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수입 의존하던 백신 잇달아 국산화

백신 안보와 필수약품 국산화에 기여한 허영섭 녹십자 회장(사진)이 1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9세.

고인은 한일시멘트 창업주인 고 허채경 회장의 차남으로, 막내인 5남 허일섭 녹십자 부회장과 함께 녹십자를 세계적인 백신 및 생명공학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고인은 서울대 공대와 독일 아헨공대를 졸업한 공학도였지만 유학 시절 척박한 국내 보건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1970년 귀국해 녹십자 전신인 극동제약에 입사했다. 한일시멘트는 당시 극동제약의 최대주주였다.

제약업계에 투신한 고인은 수입에 의존하던 값비싼 의약품을 국산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 최초의 유행성출혈열 백신을 비롯해 세계 세 번째 B형간염 백신, 세계 두 번째 수두 백신을 잇달아 개발하면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바이오 의약품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외국자본과 합자할 경우 약물 개발 시간을 줄이고 이득도 많이 남길 수 있지만 “대한민국 백신주권을 수호해야 한다”며 수차례 합자를 거절할 만큼 ‘백신 주권 확보’에 열의를 보였다. 최근 녹십자가 독자적으로 개발·공급하게 된 신종 인플루엔자A(H1N1) 백신도 전 세계적으로 신종 플루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백신 자주권을 확보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고인은 또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해 선천성 유전 질환인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도왔다. 1980년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1992년부터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왔다.

한국제약협회 회장, 사단법인 한독협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을 지냈으며 국민훈장 모란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독일 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산업기술부문 인촌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인애 씨와 아들 성수(전 녹십자 부사장), 은철(녹십자 전무), 용준 씨(녹십자홀딩스 상무)가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영안실 2층 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8시 반이다. 031-787-1503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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