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38>‘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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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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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장영신 회장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나선 2000년 4월의 모습. 구로지역 유권자의 거친 손을 수없이 잡으며 나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경영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장영신 회장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나선 2000년 4월의 모습. 구로지역 유권자의 거친 손을 수없이 잡으며 나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61〉정치를 그만두다
‘유권자 감동정치’ 모토로 당선
2001년 선거무효 판결로 하차
정치인 시간개념 부족 아쉬워

회사의 경영자로 살면서 거의 전 직원과 악수를 해봤지만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거친 손을 수없이 잡아본 적이 없었다. 2000년 3월 28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16대 국회의원선거 후보등록을 마치고 16일이라는 짧은 기간이나마 구로 구민의 거친 손을 잡으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유권자 감동의 정치’를 모토로 내세웠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키는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듯이 정치도 지역 주민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반영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선거운동 방식도 다른 후보와 차별화했다. 많은 지역주민을 만나 다양한 요구사항을 경청하면서 이를 관철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공약(空約)을 남발하지 않았다. 대신 민원을 자세히 적어둔 뒤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여부를 따져 실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으로 요구를 정리했다.

이런 이유에서 체육관 건립, 도로 개설 등 당장 실천하기 어렵지만 유권자의 관심을 끌 공약을 몇 개라도 내자는 참모의 제안을 뿌리쳤다. 대신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의정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를 펴겠다고 유권자에게 약속했다.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의미였다.

진심이 통했는지 구로구 유권자는 나를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줬다. 후보 6명이 나선 가운데 전체 유효 득표수의 48.3%를 얻었다. 지역 주민의 직접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나는 정치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업경영 마인드를 최대한 활용해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에서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재정경제위원회에 지원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부터 챙기기로 했다.

2000년에는 재경위 국감 우수의원에 뽑혔다. 국정감사 기간에 시민단체에서 구성한 국감모니터가 상임위별로 밀착 감시해 선발했는데 쟁쟁한 정치 선배들을 제치고 초선인 내가 뽑힌 것을 더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라는 격려로 나는 받아들였다. 기업인 출신이다 보니 숫자 보는 것은 다른 국회의원보다 익숙한 편이었다.

초선의원으로서 의욕적인 의정활동을 펴던 나는 의외로 정치생활을 빨리 그만둘 수 있었다. 지역구 선거가 끝나자마자 상대 후보에서 당선무효와 선거무효를 요구하는 소송 2건을 제기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먼저 진행된 당선무효 소송 건이 기각됐다. 그런데 2001년 7월 대법원이 선거관리위원회를 피고로 한 선거무효 소송을 받아들이면서 선거를 다시 해야 했다.

당에서는 재선거를 해도 다시 당선될 테니 선거에 다시 한 번 나서 달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재선거에 나서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 열심히는 했지만 정치를 권유받은 처음부터 정치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정치인 생활을 빨리 마무리할 수 있었다.

1년여의 짧은 정치경험이었지만, 경영인으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에서 느낄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다만 정치권이 전반적으로 시간개념이 부족하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부터 감사를 다시 시작하기로 해서 회의장에 가보니 의원은 나 혼자뿐이었다. 감사를 받는 정부부처 장관부터 주요 부서 사람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와 있는데 의원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기업 하는 사람은 소비자와 약속을 하면 기업에 손해가 나더라도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는 면에서 부족한 것 같았다.

모든 정치인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또 다른 아쉬움은 돈을 쓰는 부분, 즉 예산을 집행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 하는 사람은 한푼 두푼 일해서 번 돈이라 그런지 돈을 쓸 때 심사숙고해서 아껴 쓰는데, 국민이 낸 돈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써야 하는 정치권에서는 이런 면이 다소 부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치가 나의 생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짧은 정치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나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훌륭한 정치인이 될 자격이 있다는 점이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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