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이성문제 친구들 눈높이서 해결해줘요”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또래들 고민상담해주는 고2 안창학 복지부장관 표창
“아이들이 걱정거리 터놓게 어른들이 조금 기다려주세요”

26일 보건복지가족부 주최로 열린 ‘우수 청소년 상담자’ 시상식에서 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안창학 군. 안 군은 “어른처럼 훌륭한 상담은 해줄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26일 보건복지가족부 주최로 열린 ‘우수 청소년 상담자’ 시상식에서 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안창학 군. 안 군은 “어른처럼 훌륭한 상담은 해줄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애들이 마음이 억수로 불안하거든요. 나도 내 맘이 어떤지 모르는데 자꾸 옆에서 ‘니 말해봐라’ ‘지금이라도 말하면 뭐라고 안 할낀께’ 하고 다그치면 애들은 그냥 ‘마, 됐다’고 가버리지요.”

울산에서 온 안창학 군(17·문수고 2)은 “아이들이 마음을 터놓고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어른들이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 군은 자타가 공인하는 청소년 고민 해결사다. 26일 보건복지가족부 주최로 열린 ‘우수 청소년 상담자’ 시상식에서 보건복지가족부장관 표창을 받기 위해 이날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안 군이 처음 상담자로 나서게 된 것은 2006년 1월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지금은 울산시 청소년 상담지원센터가 운영하는 ‘1388 또래지원단 오아시스’의 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지만 4년 전만 해도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안 군은 “당시 소심한 성격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나보다 더 약하고 소극적인 아이를 뒤에서 찌르고 괴롭혔던 적이 있다”며 “따돌림을 당하는 스트레스를 다른 친구에게 풀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때 그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은 중학교 3학년 선배 형이었다. 선배 형은 학교에서 쭈뼛쭈뼛하게 걸어 다니는 그를 보고 “창학이 왔나, 이리 와 봐라”라고 말을 걸어주었던 것. 안 군은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었기에 반갑게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것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안 군이 항상 들고 다니는 다이어리에는 상담 내용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다이어리를 볼 가능성도 있기에 이름란에는 가명을 써놓는다. 다이어리에는 친구들의 고민이 한가득 담겨 있다.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어 놓으면 나중에 똑같은 고민을 들고 온 친구에게 예전보다 더 나은 충고를 해줄 수 있다.

학업, 가정형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상담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 상담도 많이 들어온다.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상대에게 어떻게 고백할지 고민하는 친구를 위해서는 같이 선물을 사러 가거나, 어떤 이벤트를 준비할지 알려준다. 과거의 자신처럼 소심한 성격 탓에 주변사람과 사귀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를 위해서는 일부러 큰 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불러주기도 한다. 과거 선배 형이 그의 이름을 불러줬던 것처럼.

고민이 있다면 온라인으로 안 군을 만날 수 있다. 울산시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www.counteen.or.kr)에는 안 군 외에도 닉네임 ‘네이비’ ‘토끼’ ‘레고’ ‘별찌’ 같은 청소년 상담자가 활동하고 있다.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울산으로 내려가려고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안 군에게 “오고가느라 힘들겠다”고 묻자 어른스러운 안 군에게서 아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서울 올라온다고 학교 안 가서 너무 신났어요.”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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