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못하지만 국제무대에 우뚝 선 장향숙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2월 1일 16시 33분


“전 세계 모든 장애인 스포츠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12명중 한사람으로 선출됐다는 것은 나와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역할이 그동안 얼마나 눈부셨는지를 알려주는 객관적인 평가다.”

생후 1년 6개월 만에 중증 소아마비를 앓은 장향숙 위원은 두 발 대신 전동휠체어의 두 바퀴에 의존해 이동하는 ‘여성장애인’이다. 장 위원은 지난 11월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총회에서 유효투표 수 130표 중 75표를 얻어 전체 득표 순위 3위로 10명의 집행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4년 임기의 IPC집행위원은 1년에 세 차례 열리는 집행위원회 회의에 참가하고 회원국가 승인 등 주요 정책결정에 참여한다. 패럴림픽 등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그 위상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선출된 위원장, 부위원장을 포함한 12명의 집행위원 중 장애인은 4명. 선수출신이 아닌 장애인은 장 위원이 유일하다. 장애인의 국제기구 진출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선수출신 장애인 집행위원들이 패럴림픽 등에서 메달을 따고 명성을 쌓아 얻은 결과인 반면 장 위원은 대한장애인체육회을 이끈 경력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4년간 장애인메달리스트 연금차별문제 해결, 장애인선수촌 개장, 장애인 학교체육 활성화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전쟁 폐허의 나라가 고도성장을 일궈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소외받던 장애인 체육에 대한 인식변화와 장애인 체육시설설립 등의 발전 사례는 저개발 국가들의 본보기가 됐다.

“총회 때 대부분 아시아, 아프리카의 저개발, 소외국가 대표들이 나를 지지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무한 책임감을 느낀다.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의 장애인들도 스포츠를 즐길 권리가 있다.”

장 위원의 국회의원, 대한장애인체육회장 활동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가 여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해 느껴야했던 책임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지난 4년간 진정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계와 장애인을 대변해야 한다고 의식해 너무나 힘들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재정해 대통령의 서명을 받으러 갔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가 국회에서 잘해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힘든 시기였고 동시에 좋은 기회의 시기였다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해 국회의원직이 끝나고 대한장애인체육회장 임기가 1년 남은 장 위원에 대해 장애인체육계 내부적으로 사퇴의 목소리도 나왔다. 퇴진운동의 주체였던 장애인체육인권익쟁취위원회는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실과 사무총장실, 대회의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장 위원이 스포츠 비전문가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부의 비판이었다. 직접적인 불만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이유였다. 일부선수들의 처우개선문제와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순간의 해프닝 정도라고 생각한다.”

장 위원 평생의 꿈은 ‘도보여행’이다. 그는 걷지 못하기 때문에 도보 여행에 대한 끝없는 동경이 있다. 그래서 도보 여행기 같은 내용의 책을 즐겨 읽는다. 그는 최근 한명숙 전 총리가 선물했다는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라는 책을 읽었다. 시한부 삶을 선고 받고 마지막 소원인 걷기 여행에 나선 남자의 이야기다.

“나에게 걷는다는 의미는 휠체어를 타고 가는 것이니까 휠체어로 아시아 구석구석을 도보여행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생각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실천하는 순간 되는 것이다.”

장 위원은 대한장애인체육회 역할을 국제무대로 확대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도 노력할 계획이다. 집행위원회 회의를 통해 국내 장애인 스포츠 발전 모델을 프로그램화시켜 세계에 전파한다는 구상이다. 스키를 좋아해 기회가 될 때마다 좌식스키를 탄다는 장 위원은 ‘평창 패럴림픽’ 유치에 대한 소망도 가지고 있다.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oas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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