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선천성 손가락 기형 환아들의 ‘예쁜 손 잔치’ 연주회에서 채지환 군(왼쪽)이 짧은 손가락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발가락 기형도 있는 김은진 양(4·오른쪽)은 최근 수술을 받아 발에 붕대를 감은 채 바이올린을 켰다.
김미옥 기자
마디 한 개만 겨우 남은 짧은 손가락 일곱 개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채지환 군(5)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징글벨’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난 뒤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오른손도, 여동생에게 과자를 건네는 왼손도 짤막하다. 지환이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 엄지와 오른손 엄지, 새끼손가락을 뺀 나머지 일곱 개 손가락이 짧았다.
11일 오후 2시, 서울대병원 본관 지하 강당에서 선천성 손가락 기형 장애가 있는 아이들 7명이 ‘예쁜 손 잔치’ 연주회를 가졌다. 모두 손가락이 3개 이상 부족한 아이들이다. 다섯 번째 연주자로 나선 지환이는 트렌치코트에 베레모로 잔뜩 멋을 부렸다. 집이 있는 부산보다 서울이 훨씬 춥다며 어머니 양연혜 씨(34)가 두꺼운 코트를 챙겨줬지만 지환이는 일부러 입지 않았다. “지환이가 요즘 부쩍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써요. ‘엄마 내 손은 왜 이렇게 생겼어?’ 하고 물을 때가 많아졌어요.” 악수를 청해도 지환이는 손을 뒤로 숨기는 법이 없었지만 이따금 물끄러미 자기 손을 바라봤다.
지환이의 짧은 손가락에는 꿰맨 자국이 많다. 이제 다섯 살이지만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내 손가락을 조금 더 길고 가늘게 만드는 수술을 벌써 세 차례나 받았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이다. 자기 살이 아니면 새 살이 자라지 않아 아버지 채정완 씨(38)는 살을 떼어 주고 싶어도 못한다. 앞으로도 계속 많게는 1년에 한두 차례 수술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놀릴까봐 걱정하니까 ‘그 아이들도 모두 친구로 만들겠다’고 그래요” 매년 큰 수술을 견뎌야 하는 아이 생각에 부모는 일부러 병원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보지도 않지만 아이는 벌써 부모님을 챙겼다.
이 아이들은 모두 서울대 성형외과 권성택 교수의 환자들. 권 교수의 권유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다.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게 돼 손에 힘이 생기고 손가락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손가락이 몇 개 부족하다고 해서 감추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손을 내보일 수밖에 없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자신의 손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자신감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왼손은 정상이지만 오른손은 엄지를 뺀 나머지 손가락이 모두 마디가 하나뿐인 장은정 양(7)은 ‘피터 파이퍼’를 연주했다. 잔뜩 굳은 얼굴로 “엄마, 연주할 때 옆에 있어주면 안 돼?”하고 떨던 은정이는 정작 피아노 앞에 앉더니 매끄럽게 연주를 했다. 은정이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빠른 왼손 연주에 오른손이 힘겹게 따라갔지만 실수는 없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손에 힘이 많이 붙었다고 한다.
연주회가 끝난 뒤 아이들은 숙제를 하나 받았다. 내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수부외과학회 만찬공연을 위해서다. 11일 연주에 나선 어린이들은 내년 학회 만찬에서 세계 각국의 국가를 연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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