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서정현 씨, 30년동안 매일 일정액 모아
총 3억 두차례 기부… “정신적 유산 물려주는 일”
“장학금을 받은 여학생이 교사가 돼 첫 월급으로 선물한 조끼가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전남 순천시 생목동에 사는 서정현 씨(61·사진)는 ‘나무 농사꾼’이다. 순천시 서면과 남면에 걸쳐 있는 5만 m²(약 1만5000평)에 나무를 키워 판매한다. 그는 나무를 키우듯 1만1000일 동안 가정형편이 힘든 학생들을 돕기 위한 저축을 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에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서 씨는 순천시 서면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14세 때부터 낙엽을 모아 시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보탰다. 엄동설한에 새벽밥을 먹고 집에서 4.5km 떨어진 순천시 황전면 송치재까지 가서 낙엽을 모았다. 작은 몸에 지게를 지고 낙엽더미를 옮기다 굴러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는 당시 흩어진 낙엽을 모으면서 ‘어른이 되면 같은 처지에 놓인 학생들을 돕겠다’고 마음먹었다.
서 씨는 17세 때부터 고향에서 꽃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조경업자로 변신한 뒤 결혼도 하고 딸들을 낳았다. 1979년 사업차 서울에 갔다 길에서 남루한 고아형제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든 5000원을 건넸다. 어린 시절 낙엽더미를 모아 팔며 한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해야겠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같은 해 8월경부터 매일 1만 원씩 저축했다. ‘막 배우기 시작한 술, 담배를 끊고 30년간 그 돈을 모아 장학재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에 걸음마를 뗀 것. 기부금을 모으던 중 단 몇 만 원이 없어 대출을 받을 때도 있었다. 돈이 떨어져 1주일 기부액을 한꺼번에 저축하기도 했다.
1999년 힘들게 20년간 모은 원금과 이자가 1억75만 원이 됐다. 낙엽을 모으며 자신과 약속한 ‘기부의 꿈’이 무르익기 10년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2년간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당시 45세)가 숨을 거둔 것.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함께 자신도 죽으면 기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모은 돈 전부를 순천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장학금을 내놓은 후 서 씨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릴 때 자신과 한 30년 기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았던 것. 그는 1999년 9월부터 마이너스 통장에서 매일 2만 원씩 빠져 나가는 방식으로 기부금을 다시 모았다. 30년 기부 약속에서 부족한 10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달 환갑을 맞아 10년간 모은 9318만 원에다 나무를 키우면서 번 돈 1억682만 원을 보태 이달 18일 순천시에 전달했다. 순천시는 이 돈으로 서 씨의 호를 딴 ‘청향장학회’를 만들었다.
그동안 서 씨는 환갑잔치나 여행도 가지 않고 여윳돈을 장학회에 모두 쏟아 부었다. 19년 전 산 낡은 승용차를 소중하게 타고 다닐 정도다. 딸 5명은 아버지의 기부저축으로 해외어학 연수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서 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은 아니지만 기부 약속을 지키기 위해 30년 2개월 동안 노력했다”며 “사회에서 들꽃처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기부를 통해 후손들에게 정신적 유산을 물려줬으면 좋겠다”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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