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붓으로 이 글자를 써 볼 거예요. 우리 성민이는 큰 붓으로 써 볼까? 연필 글씨처럼 빨리 쓰지 말고 천천히 쓰는 거예요.”
6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한일유치원 토끼반 교실에서는 유치원생 예닐곱 명이 고사리 손에 큰 붓을 쥐고 ‘할머니 선생님’ 신평림 씨(79)가 나눠준 이면지에 한자 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붓질에 손과 옷에는 먹물이 묻어났지만 아이들은 신 씨와의 수업이 마냥 즐거운 모습이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신 씨가 막내 손자뻘인 원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나선 데에는 어린시절 가난 때문에 이루지 못한 ‘선생님’이 되는 꿈이 계기가 됐다. 1931년 전남 영암에서 4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난 신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보통학교(초등학교)’ 6년을 다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이후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 인형공장 등에서 일하며 1남 6녀를 키워내기까지 신 씨의 삶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고 신 씨의 마음속에 ‘못 배운 한’이 응어리로 남았다.
그러던 신 씨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평생교육시설인 양원주부학교 중학과정에 입학해 할머니 중학생이 된 것이 2002년. 그의 나이 71세 때의 일이었다. 신 씨에게 가장 고역이었던 과목은 바로 영어. “실제 생활에서 말할 일은 없이 글로만 영어를 배워야 하다 보니 영어 시간에 고생을 좀 했지요.” 하지만 신 씨는 중학과정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2년 뒤인 2005년에는 고졸 검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해 고졸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자였다.
신 씨의 향학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7년 영남외국어대 사회복지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2급,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땄고 지난해 2월 졸업하며 그토록 소망했던 ‘사각모’도 썼다. 노동부의 ‘디딤돌일자리 사업’을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이 유치원에서 매주 5일 한자와 서예 수업 등을 하고 받는 급여는 월 70만 원 선. 자택이 있는 경기 광명에서 버스와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길고도 피곤한 출퇴근길이지만 신 씨는 아이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주말이면 평일을 기다린다. 신 씨는 “당차고 똑똑한 요즘 아이들을 매일 만나다 보니 피곤한 줄도 모르고 젊게 사는 기분”이라며 “수업시간은 아이들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할머니 선생님에 대한 원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이날 수업을 들은 이재혁 군(6)은 “오늘 ‘물 수(水)’랑 ‘어미 모(母)’도 배웠다”며 “우리 할머니 같은 선생님이 가르쳐 줘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이 유치원 김현란 원장(54)은 “일단 원생들이 신 선생님을 매우 좋아한다”며 “인생 선배로서도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라 유치원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젊은 선생님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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